2010년 11월 7일 일요일

A man who has different spirit !(민14:24)

1. 신앙은 신비의 경험입니다.





신앙은 정말로 신비의 세계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쉽고 단순하게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많은 신비의 영역이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A Nature of God) 을 이해 할때면 우리의 인간의 이성적 범주에서는 너무나 이해하기 힘든 때가 참으로 많으니 말이다.

민수기를 읽다가 참으로 남감한 장면을 만난다.



이스라엘이 430년동안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는동안 그들의 고통을 신원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행하시는 장면을 본다.

10가지의 재앙을 통해 바로를 무력화 하고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때 온갖 금은보화를 애굽사람들로부터 받게 하시고 심지어는 애굽사람들까지 이스라엘 사람을 따라 출애굽 구원의 여정을 떠나는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나안을 그들이 살수 있는 그리고 살아야 할 약속의 땅으로 주시고 가나안땅을 정복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바로의 병거가 이스라엘을 추적할때 그들앞에 놓여진 홍해를 하나님의 권능으로 가르시고, 광야를 다니는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을 안내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경험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모세에게 명하여 그들이 정복할 땅을 눈앞에 두게 하시고

정탐군을 보내어 그 땅을 정탐할 것을 말씀 하신다.

그래서 모세는 각 12지파를 따라서 정탐꾼을 선발할것을 명하여 가나안에 들어갈 정보부대를 창설한다.

민수기 13장은 이 정탐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장인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자신이 주실 약속한 땅을 주시기 전에 이 땅을 정탐하라고 명령 하셨을까?

하나님이 친히 앞서서 그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시면 될 텐데 왜 광야에서도 하지 않았던 전쟁을 자신이 약속한 땅에서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



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앙의 여정의 계획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스라엘이 바로의 꺽으며 애굽을 건너게 하는 데 이스라엘이 행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때 그들이 행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이셨고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였다.



구원의 비밀인 것이다.

구원을 계획하는 일도, 구원을 이루는 일도 우리는 어떤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구원은 전적으로 여호와께 속한 것이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서 2:8-9 절은 "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 라고 말하고 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신 그 일을 바라보고 받아 들이는 것이다.

구원의 믿음은 받아 들임의 믿음인 것이다.



민13장에 이스라엘의 정탐꾼은 가나안땅에 들어간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40일 동안을 그 땅을 경험하게 하신다.

그들의 광야생활의 40년과 가나안땅의 40일은 정말로 전혀 다른 경험인 것이다.

민13:27에 이스라엘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을 수 있다.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데 ....... "

과연 그 땅은 하나님이 말씀 하신대로 비옥한 땅이었고 모든 과실또한 얼마나 큰지....포도송이 하나를 장정 구 사람이 막개기에 꿰어 메고 다닐 정도 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신실하시고 참되시며 진실하심을 확인 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틀려본적이 있는가?



2.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과의 차이를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그런데 민13:28 ~29 절에 보면 이스라엘 정탐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 로 시작되는 그들의 보고는 그들이 현실을 보는 그들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성읍은 견고하고.....심히 클 뿐 아니라......거기서 전설속에서만 듣던 아낙자손( 네피림의 후손들v33)을 보았고........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v33)



신앙을 살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과 흡사하지 않은가?

신앙의 갈등은 여기서 부터 출발한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은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비전과 우리의 현실과의 차이, 갭인 것이다.

어린아이와 거인의 차이가 아니라..... 거인과 메뚜기......

현실에서 경험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능력은 항상 이러한 큰 차이를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맏기신 적은 없으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우리가 한다면 우리는 항상 우리가 성취한 그 일에 매료되어 자신을 높이는 일에 현안이 될 수 있으런지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맏기심으로 우리 자신의 신앙을 테스트하시면서 신앙과 현실의 차이 사이에서 우리의 참된 신앙의 태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보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시련을 경험해 보지 못한 신앙은 신앙일 수 없는 지도 모른다.

바울은 로마에서 더더욱 " 시련이 없는 사람은 사생자요......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시련은 연단을 연단은 인내를 인내는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허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는 너희가 시련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고 말씀 하신다.

왜냐하면 그 시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지난 8년동안 가나안땅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사람처럼 이 땅을 정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많은 이들이 뉴질랜드를 다녀가며 이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같다고 아름다운 땅 축복의 땅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ICINZ을 지나가는 많은 이들이 이 곳에 왜 선교사 훈련센터가 있어야 되는지.....그리고 앞으로 선교사들을 쉬게 하고 재충전하는 일을 위해서 얼마나 적합한지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는 소릴르 듣는다.



그런데.......우리가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약속의 땅일 수 있고 또 그러한 축복의 조건을 가진것을 우리가 다 알고 동의할 수 있지만.....마치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 하는 이스라엘 정탐꾼 처럼.............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이성적 판단과 보고를 듣게 되는 것이다.



나는 늘 이 현실과 비전, 현실과 하나님의 약속이 갶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경험하여 왔다.

이것이 신앙의 딜렘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이런한 모습이 아닐런지..............?

비행사들의 훈련중 가장 어려운 것이 계기비행을 시작하는 것이란다.

고공의 창공에서 육안으로 비행하는 시계비행은 저속의 항공기 일때 가능한 일지만 수천피트 수만피트의 창공에서 음속의 비행기를 모는 일은 시계비행으로 이미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지형표시로 삼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그는 자신의 육안으로 도저히 느낄수 없는 숫자의 정보만을 갖고.....그 계기를 의지하여 비행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조종사들은 그 계기비행의 순간이 조종사에게 가장 불안했던 경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여정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나의 경험과 지식과, 정보와 이성적인 합지적인 조건과 대안이 아니라.......마치 현실과는 아루런 관련이 없는 하나님의 비전의 지도만을 갖고 나의 전 인생을 여행한다는 일은 가장 불안한 삶의 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지난 8년을 계기비행을 하는 조종사처럼 우리 가족을 이끌고......이 가나안땅을 정복해 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3. 신앙은 불순종과의 싸움입니다.



민13:26~33 에서 정탘꾼들의 보고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는것만 같아 보인다.

현실에의 인식, 자각, 이럴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주 현실의 노예가 되어 불안이라는 감옥에 갖힌 죄수처럼 그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미난 일은 불순종은 항상 회한에서 시작됩니다.

차라리 예수 믿지 않았을때는 자유라도 있었는데, 재미라도 있었는데.........

차라리 그 때가 더 나았어........

민14:1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 우리가 애굽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것을............. v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리 애굽으로 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여러분의 지금의 삶의 모습은 어떤가요?

당신은 과거를 회상하며.......차라리 내가 살아왔던 그 때가 더 낫다고 생각하며 회한의 원망에 가득차 있지는 않는지요?

거기다가 조직적인 움직임을 시작하지는 않는지요?

v4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 두종류의 리더십 *



여기에 보니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봅니다.



1)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십



즉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불신앙, 불순종의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어.....부정적인 생각을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것처럼 믿으며 그것을 설파하며 무리를 모으는 부정적 영향력의 리더십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은 항상 무리를 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쩌면 범죄하는 사람이 항상 단독으로 범행하기 보다는 자기를 동조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행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원수 마귀는 항상 자리를 추종하는 귀신들의 무리와 자리를 따르는 불순종의 아들들 이 풍속을 쫒는 무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어......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 왕 노릇 하는 마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민14:4)



여러분 ! 조심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 있다면 나는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로 살고 있는지? 조심 스럽게 자신을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리에 당신이 있다면 당신의 영향력은 더 클 것입니다.



2)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십



그런데 하나님은 역사를 이루는 데에는 항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하신 대로 믿고 따르는 믿음의 리더십이 있다는 것입니다.

v6~10

수많은 사람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순간에 가나안땅을 정탐했던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옷을 찢습니다.

극한 슬픔의 표현입니다.

극한 절망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긍정의 힘을 설파 하기 시작합니다.

v7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

v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 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시며.......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

V9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지 마십시오.....또 그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먹이입니다.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아 !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이것은 긍정의 힘입니다. 신앙은 우리의 보는 눈을 다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정의 이유를 찾아낼때 신앙의 사람은 긍정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2:10의 표대결에서 신앙의 눈으로 긍정의 믿음을 설파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소수였습니다.

민주주의 원칙대로라면 우리는 다수의 힘을 이길 힘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항상 수많은 부정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힌 다수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논리로 이길 힘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길 힘은 여호와의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분노로 돌에 맞으려 할때 여호와께서는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 보여 주십니다.

아 !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비밀입니다.

오늘 교회는 세상의 밥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돌을 집어 들고 교회를 치려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우리의 위기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앙의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기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사단의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부활의 영광이 주님위에 임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칼의 힘이 아니라, 권력의 힘이 아니라.......

우리는 부활의 영광을...여호와의 거룩의 영광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막 가운데 영광으로 거하셨던 주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 ! 하나님 ! 이 곳 ICINZ에 당신의 영광이 거하게 하소서.....

부정의 말들이 사라지고 원망의 말들이 사라지고.......

여호와의 영광을 선포하며 찬미와 감사의 고백들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 제가 다시 당신앞에 그렇게 서기를 원합니다.

내 입술에서 모든 원망의 말이 사라지게 하시고....영광과 찬미와 감사와 긍정의 말들이 있게 하여 주시고....긍정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



4. 하나님은 그 마음이 다른 자를 찾습니다.



하나님은 진노 하십니다.

이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멸하시겠다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와 다시 딜(deal)을 하시기를 원하는 모습을 봅니다.

v14:12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



지도자의 딜렘마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을때 네 주님 그렇게 하십시오 ! 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로 변하는 것을 봅니다.

마치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서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금 모세를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 당신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만일 애굽 사람들이 가나안의 거민들이 당신께서 당신이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능력이 없으셔서 이들을 다 이곳에서 죽이셨다고 하면 당신의 이름의 영광은 어찌 되겠습니까?

하나님 맞습니다.

백성들의 잘 못한것이 맞고 불순종한것이 맞지만............

하지만 당신이 이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고 이들을 축복하고 싶어하지 않아서 이들을 진멸하였다 하면.....

당신의 이름의 평판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14:16~17



이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모세를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모세가 어떤 리더가 되었는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중보자요 중재자요......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백성을 사랑하며 구원하는 우리 주님의 모습을 닮은 리더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참으로 선한목자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양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기독교 지도자로 사역할때...... 원망과 시비의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럴때마다......

실망과 분노에 가득차서....하나님 저들을 맘대로 하십시오" 라고 손을 놓고 싶을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차라리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셨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런데.....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깊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리고 한가지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용서하시지만 당신은 당신의 공의를 실현 하신는 하나님 이신것입니다.

그들의 죄는 용서를 받았지만 불평하고 원망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부분이 약속의 땅을 밟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라웁게도 여호수아와 갈렙을 기억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갈렙을 향하여 말하기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민14:24 "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아 ! 얼마나 영광스러운 말인가요........?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오 주님 ! 제가 갈렙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주님을 온전히 따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로 하여금 내가 밟았던 이 땅에 다시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그리하여 당신의 이름을 높이며......온전히 여호와가 통치하시고 소유하는 ICINZ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이곳에서 당신의 안식의 축복이 실현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이곳에서 당신의 샬롬이 이루어 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

이곳에서 부정한 생각과 불순종이 사라지고 순종과 긍정의 믿음을 경험하는 변화의 체험이 있는 여호와의 영광이 임재하는 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나의 마음이 다르게 도와 주시옵소서 !

나의 생각이 다르게 도와 주시옵소서 !

나의 행동이 다르게 도와 주시옵소서 !



주여 ! 이곳이 거룩한 당신의 영광이 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