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처럼 진짜에 목말라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진짜에 목숨을 걸었으면 참기름인데 순참기름이라 합니다. 진짜 순 참기름까지 나오는 판입니다. 영적인 가치에 있어서도 진리가 아니라 참진리라고 붙입니다.
요즘은 가짜가 너무 진짜 같아서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가 참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혹 이러한 일들이 우리의 영적인 생활과 삶에도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지요?
하나님은 각세대마다 이처럼 영적인 배교와 타락에 대하여 아주 분명한 말씀을 전하여 주십니다.
10계명에서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지 말 것을 말씀 하십니다.
우상이란 참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어의 표현에 gods라고 표현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God이 아니라 gods입니다.
어찌하면 하나님과 거의 비슷한 기능과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창세이래로 우리는 영적인 타락이후로 이러한 진리와 진실에 대한 영적분별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아 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짝 변질한 사단의 궤교에 하와는 진짜같은 가짜의 영적인 deception즉 속임에 빠져 인류전체에 커다란 재앙을 가져 옵니다.
말세에는 더더욱 이러한 영적인 속임수, 거짓진리, 거짓 교사,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날 것을 말씀합니다. (마24:14) 이것이 주님의 재림, 즉 말세에 대한 분명한 증거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각 세대에 나타나는 영적인 배교, 그리고 속임에 대한 분명한 경고를 보여 주는 사건을 우리에게 소개 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여로보암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의 영적생활에 대한 무서운 경고를 들려 주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왕의 실정과 배교로 인하여 그를 경계하고 견책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웠던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왕으로 세우실때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존귀히 여기며 주의 법도를 따하 행하면 다윗에게 행했던 것처럼 그를, 그의 나라를 축복하실것을 약속 하십니다. (왕상 11:38)
이 점에 보면 그는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하여 세워진 하나님의 왕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영적인 경험을 따지자면 그는 하나님을 체험한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율법과는 전혀 동떨어진 배교의 길을 걷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의하여 세워진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그는 그의 통치를 통하여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그러한 나라를 세울 기회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하나님의 기대와는 정말로 다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1. 그는 하나님의 왕국이 아닌 자신의 왕국을 건설합니다.
그에게는 놀라운 통치력이 있었음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열지파가 그에게 속한 것을 보면 이는 엄청난 축복이요 이를 통치하는 그는 놀라운 정치력을 가진 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이 놀라운 축복을 사용하여 그의 성읍, 도시들을 건설하면서 왕국을 건설하여 나가지만 이는 하나님의 세우시는 왕국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과 자신의 뜻을 따라 세워 가는 인간적인 개인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현대교회에 이루어 지는 가장 위험한 타락이 교회 가운데 이루어 지는 마치 교회를 교회 지도자의 또는 교회의 일련의 리더십 그룹이 마치 자기왕국을 건설하는 것과 같은 교회성장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 되어 집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여로보암이 행했던, 영적기만이라고 믿습니다.
마치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여러곳에 도시를 건설하지만 이 도시들은 하나님의 도성이 아니라 여로보암 자신의 도성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v27절에 보니까, 유다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가 제사를 드릴때에 그들이 변하여 유다왕국에 남으며 자신을 배반할까봐 자신의 도성을 건설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중세에 이르러 교회는 일반인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알까봐 하나님의 말씀을 사제들에게만 허용하고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모든 권한을 사제, 교황권에 한하여 제한 하였던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난 영적 권한을 그리고 나중에는 정치력 권한까지 소유하였던 것을 보게 되어 집니다. 중세의 카톨릭은 마치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참된 장소에서 참된 예배를 두려워 하여 대체제사를 만들었던 것과 같은 영적 기만을 행하였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알게 되어 집니다.
2. 여로보암은 영적인 기만을 통하여 거짓 예배, 거짓 영성을 만듭니다.
v28에 보니까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 예배할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이 계획하여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 이스라엘아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 갈것이 없도다, 이는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말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영적인 기만에 속아 넘어 갑니다.
이들에게는 참된 예배와 제사가 아닌, 진정한 예배와 제사를 대체한 유사제사와 유사 예배를 드리는 오늘날 교회에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남을 봅니다.
수많은 가르침들이, 참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만족시키며 그들을 위한 그들의 종교를 만드는 정교중독자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가르치고 예배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육신과 그들에게 의미와 만족을 줄 수 있는 유사기독교적 가르침을 통하여 깊은 영적기만에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는가에 관심이 모아져 있다면 당신은 깊은 영적기만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 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위해 존재하는 여러분의 우상을 구하고 있는것은 아닌지요?
3. 여로보암은 거짓 영성을 통해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냅니다.
v 29-32 절 말씀에 보니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그들의 산당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는 이 산당을 섬길 제사장을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호와의 절기가 아닌 유사한 그들만의 절기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 시대에 일어난 것처럼 건물에 관심을 갖습니다.
산당을 짓는 것처럼, 그들은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장소와 건물에 더 깊은 관심을 두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비극입니다.
또 하나의 무서운 것은 순결치 못한 제사장 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레위 지파에서 삼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레위지파가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는 엄청난 불순종을 자행 합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영적제도와 그리고 교권주의등 그들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과 기름부으심과 상관이 없는 보통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삼는 일이 오늘날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신학교에서 수많은 신학생들이 목회자가 되기 위하여 배출 됩니다.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부르신 영적 소명에 분명한 간증과 증거가 있는 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제자 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제자중 지원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적 사역에는 지원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고 뽑으신 자를 통하여 영적인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만입니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적인 사역을 감당하여 나아갈때 하나님의 분명하신 부르심과 뜻을 분별하는 분명한 간증과 확증이 있어야 할 것 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절기를 지키게 합니다.
이것은 진리를 희석시키고 인간적인 제도나 규례를 통하여 여호와의 명하신 절기와 상관없는 자기들의 절기를 만들어 지키는 엄청난 불순종을 범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4. 영적 기만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뜻을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대로 정한...........33절의 말씀에 보니 자기 마음대로" 라고 말씀 하십니다.
주님의 로드십이 없습니다.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주님을 섬기되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데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워스트한 영적 기만인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고 진정한 영성은 그리스도의 주권아래 무릎을 꿇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십니까? 아니면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뜻을 따라 주님을 순종하십니까?
This is a blog of Johnny Song who has been working with Operation Mobilization more than 20 years since 1989. Currently, he is located in the beautiful rural town of Cambridge and is running missionary training courses for their cross cultural ministry and Global leadership. He is also involved in missionary care ministry, and counseling ministry. He's got a MA in Christian Education, and is a Doctor of Christian Counselling.
2010년 10월 13일 수요일
2010년 10월 11일 월요일
꿈을 꾸기를 원한다면........
잠들기 전에,
정신의학자들은 자신이 꾸고 싶은 꿈을 꾸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잠들기전에 그 날 있었던 일을 적어 두는 등 문제나 걱정거리를 세밀하게 생각해 놓는다.
그런 뒤 꿈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응답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세피드 코미나스의 [ 치유의 글쓰기] 중에서...
성경의 이야기중에 야곱의 꿈(창 28:10-22)은 매우 진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장자의 축복권을 교활한 방법으로 그의 형 에서로 부터 빼았는다. 그리고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난을 가기 위하여 긴 여행을 떠난다.
얼마나 긴 여행이었을까?
얼마나 외로운 여행이었을까? 얼마나 처량한 여행이었을까?
그야 말로 그는 외로운 방랑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의 인생이 그런 모습이 않을까? 우리가 최상 이라고 붙잡았던 것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안식과 쉼을 가져다 주지 못함이 야곱의 야망에 찬 장자권이 그것과 비할바 못되는 것 같다.
1. 꿈은 인생의 가장 외로운 순간에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에게 꿈이 필요한 때는 인생의 정점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종 우리가 꿈을 꿀때는 성경의 야곱과 같이 인생의 가장 외로운 순간에, 인생의 바닥에 있을때
필요한 것이다. 가장 외로운 순간에, 가장 험난한 인생의 순간에 우리는 꿈을 갖게 되고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는 여행중의 한 들판에서 한 돌을 베고 잠을 자다. 꿈을 꾸게 되었던 것이다. (v11-15)
와, 돌을 베고 잠을 청할 정도로 그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정말로 인생의 가장 bottom line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하늘과 연결되어지는 꿈을 꾸게 된다.
2. 세상의 꿈이 하니라 하늘의 꿈을 꾸어라 !
성경은 야곱이 하늘문과 연결되는, 즉 주의 천산들이 하늘을 오르 내리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꿈이 이 땅에만 존재하는 그리고 이 땅에만 속한 것이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그리고 이땅에 속하여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꾸는 그 꿈이 영원한 가치를 지닌 천상의 것, 하늘의 것, 하나님 나라에 속한 꿈이기를 바라신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나의 꿈이 과연 하나님 나라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 꿈이 이루어 질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 되어질 수 있는, 그리고 영원히 존속하는 영원한 가치를 가진 그런 꿈을 나는 갖고 살아 가는 것일까?
만일 이 땅에만 속한 것이라면 그것은 꿈이 아니라 그것은 한 낱 욕심에 불과한 것이다.
3. 꿈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아라 !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을 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야곱은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하나님의 꿈을 본 것이다.
내가 하늘의 문을 열고 하늘의 음성을 들을 때 그 꿈은 단순히 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를 축복하신다고 말씀 하신다.
수많은 자손이 그를 통하여 나올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왜 하나님은 에서에게 그 꿈을 말씀 하시지 않고 교화하기까지 한 야곱에게 그분의 꿈을 말씀 하시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야곱은 하늘 나라에 대한 가치를 보았던 것이다.
그의 모든 것을 걸고라도 그는 하나님의 축복,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동일한 약속의 축복을 갈망하는 간절한 사모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늘 나라를 사모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던 것이다.
이 열망이야말로 하나님이 찾는 예배자의 모습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전심으로 찾는 자를 찾으신다" 말씀 하신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하지 않으셨던가 ?
예수님은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자기를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 하신다.
야곱 ! 그는 비록 형을 속이는 것 같으나...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자 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야곱을 하나님은 이쁘게 보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하늘 나라의 계획을 말씀 하셨던 것이다.
4. 우리가 하나님의 꿈을 꿀때 하나님의 임재는 떠나지 아니 하신다.
15절에 보니 하나님이 약속하여 주시기를 "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 하신지라..."
아 하나님이 그 꿈이 이루어 지기까지 떠나지 아니 하시겠다니.....
이 말은 내가 하나님 안에서 그 꿈을 이루기 까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내가 하나님 나라의 꿈을 꿀때 내 사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은 결단코 나를 버리시지, 떠나시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아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요 은혜인 것이다.
5. 하나님의 꿈은 삶의 환경을 바꾸어 놓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을 통하여 그의 인생의 변화를 경험 하는가?
아브라함 링컨과 같이, 월트 디즈니와 같이, 꿈을 가진 사람은 그의 인생이 변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성경은 야곱이 자기가 잠자고 꿈꾸었던 곳을 벧엘 이라고 지었다.
벧엘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곳이 원래 루스라는 지역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 안에서 꿈을 꿀때, 그 꿈을 꾸는 사람을 통하여 그곳은 거룩한 하나님의 땅이 되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꿈을 꾸는 그 사람이 서 있는 장소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은 신약에 와서는 그곳은 교회를 말씀 하신다.
왜냐하면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 들중에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 하시지 않으셨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인가? 당신은 하나님의 꿈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 당신이 꿈을 꾸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상세한 내역을 거래 하기를 원한다.
마치 야곱이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서원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당신의 꿈을 나누어라.
그럴때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꿈을 꿀 것이다.
정신의학자들은 자신이 꾸고 싶은 꿈을 꾸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잠들기전에 그 날 있었던 일을 적어 두는 등 문제나 걱정거리를 세밀하게 생각해 놓는다.
그런 뒤 꿈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응답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세피드 코미나스의 [ 치유의 글쓰기] 중에서...
성경의 이야기중에 야곱의 꿈(창 28:10-22)은 매우 진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장자의 축복권을 교활한 방법으로 그의 형 에서로 부터 빼았는다. 그리고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난을 가기 위하여 긴 여행을 떠난다.
얼마나 긴 여행이었을까?
얼마나 외로운 여행이었을까? 얼마나 처량한 여행이었을까?
그야 말로 그는 외로운 방랑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의 인생이 그런 모습이 않을까? 우리가 최상 이라고 붙잡았던 것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안식과 쉼을 가져다 주지 못함이 야곱의 야망에 찬 장자권이 그것과 비할바 못되는 것 같다.
1. 꿈은 인생의 가장 외로운 순간에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에게 꿈이 필요한 때는 인생의 정점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종 우리가 꿈을 꿀때는 성경의 야곱과 같이 인생의 가장 외로운 순간에, 인생의 바닥에 있을때
필요한 것이다. 가장 외로운 순간에, 가장 험난한 인생의 순간에 우리는 꿈을 갖게 되고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는 여행중의 한 들판에서 한 돌을 베고 잠을 자다. 꿈을 꾸게 되었던 것이다. (v11-15)
와, 돌을 베고 잠을 청할 정도로 그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정말로 인생의 가장 bottom line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하늘과 연결되어지는 꿈을 꾸게 된다.
2. 세상의 꿈이 하니라 하늘의 꿈을 꾸어라 !
성경은 야곱이 하늘문과 연결되는, 즉 주의 천산들이 하늘을 오르 내리는 꿈을 꾸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꿈이 이 땅에만 존재하는 그리고 이 땅에만 속한 것이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그리고 이땅에 속하여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꾸는 그 꿈이 영원한 가치를 지닌 천상의 것, 하늘의 것, 하나님 나라에 속한 꿈이기를 바라신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나의 꿈이 과연 하나님 나라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 꿈이 이루어 질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 되어질 수 있는, 그리고 영원히 존속하는 영원한 가치를 가진 그런 꿈을 나는 갖고 살아 가는 것일까?
만일 이 땅에만 속한 것이라면 그것은 꿈이 아니라 그것은 한 낱 욕심에 불과한 것이다.
3. 꿈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아라 !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을 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야곱은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하나님의 꿈을 본 것이다.
내가 하늘의 문을 열고 하늘의 음성을 들을 때 그 꿈은 단순히 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를 축복하신다고 말씀 하신다.
수많은 자손이 그를 통하여 나올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왜 하나님은 에서에게 그 꿈을 말씀 하시지 않고 교화하기까지 한 야곱에게 그분의 꿈을 말씀 하시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야곱은 하늘 나라에 대한 가치를 보았던 것이다.
그의 모든 것을 걸고라도 그는 하나님의 축복,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동일한 약속의 축복을 갈망하는 간절한 사모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늘 나라를 사모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던 것이다.
이 열망이야말로 하나님이 찾는 예배자의 모습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전심으로 찾는 자를 찾으신다" 말씀 하신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하지 않으셨던가 ?
예수님은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자기를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 하신다.
야곱 ! 그는 비록 형을 속이는 것 같으나...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자 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야곱을 하나님은 이쁘게 보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하늘 나라의 계획을 말씀 하셨던 것이다.
4. 우리가 하나님의 꿈을 꿀때 하나님의 임재는 떠나지 아니 하신다.
15절에 보니 하나님이 약속하여 주시기를 "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 하신지라..."
아 하나님이 그 꿈이 이루어 지기까지 떠나지 아니 하시겠다니.....
이 말은 내가 하나님 안에서 그 꿈을 이루기 까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내가 하나님 나라의 꿈을 꿀때 내 사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은 결단코 나를 버리시지, 떠나시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아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요 은혜인 것이다.
5. 하나님의 꿈은 삶의 환경을 바꾸어 놓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을 통하여 그의 인생의 변화를 경험 하는가?
아브라함 링컨과 같이, 월트 디즈니와 같이, 꿈을 가진 사람은 그의 인생이 변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성경은 야곱이 자기가 잠자고 꿈꾸었던 곳을 벧엘 이라고 지었다.
벧엘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곳이 원래 루스라는 지역이었다고 말한다.
하나님 안에서 꿈을 꿀때, 그 꿈을 꾸는 사람을 통하여 그곳은 거룩한 하나님의 땅이 되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꿈을 꾸는 그 사람이 서 있는 장소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은 신약에 와서는 그곳은 교회를 말씀 하신다.
왜냐하면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 들중에 함께 있느니라고 말씀 하시지 않으셨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인가? 당신은 하나님의 꿈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 당신이 꿈을 꾸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상세한 내역을 거래 하기를 원한다.
마치 야곱이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서원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당신의 꿈을 나누어라.
그럴때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꿈을 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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