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1일 화요일

" I am Sorry ! " 를 잘하는 사람이.....

얼마전 누군가의 글에서 재미난 글을 읽었다.

" I am Sorry ! 를 잘하는 사람이 고액 연봉을 받는다" 는 글이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았다.



‘I am sorry'라고 사과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소득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조그비 인터내셔널은 최근 7천59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인터뷰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연봉이 10만달러 이상인 고소득자가 연간 2만5천달러 이하의 소득층보다 2배 정도 사과를 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꼈을 때 사과하느냐'는 질문에 연봉 10만달러 이상자 92%가 '그렇다'고 답변한 반면, 7만5천~10만달러 소득자는 89%, 5만~7만5천달러 소득자는 84%, 3만5천~5만달러 소득자는 72%, 2만5천~3만5천달러 소득자는 76%, 2만5천달러 이하 소득자는 52%만이 '그렇다'고 답변했다.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사과를 잘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또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을 때도 사과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10만달러 이상 소득자 가운데 22%가 '그렇다'고 답변한 반면, 2만5천달러 이하 소득자는 13%만이 '그렇다'고 답변, 10만달러 이상 고소득자가 2만5천달러 이하 빈곤층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사과를 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펄아울렛의 테리 셰퍼드 사장은 "이번 조사의 결론은 많이 벌고 싶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로 재미난 통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이 글에서처럼 나는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은 아니다. 가난한 선교사가 고액을 받을일은 만무하지만 내가 고액을 받느냐 안 받느냐를 떠나서 , 나는 내가 잘못한 일에서 조차도 " 미안하다" 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인색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무엇이 우리를 Sorry 에 인색한 사람을 만들까?



첫번째, 우리 자신은 자신이 늘 완벽한 존재라고 믿고 싶어한다.

내가 Sorry" 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내가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나이를 먹어 갈수록 그 경직성은 더하여 간다.

더욱이 우리가 어느덧 작든 크든 리더라고 불리워지는 위치에 있을 때 내가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만큼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꼴이 된다고 생각하니 더욱이 그 말이 어려움을 보게 된다.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나서 더더욱 그런 경향이 두드러 진다.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인데....내가 나의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만큼 내가 영성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그럴때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존경을 잃어 버린다고 생각하는 불안함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참 얄굿은 자존감이다. "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을 수없이 외쳐 대지만 우리는 수도없이 내가 죽었다는 외침 속에서도 여전히 나를 지키고 싶은 얄굿은 자존감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죽엄음을 나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을 할때 즉각적으로 그 실수를 인정하고 I'm sorry, its my fault" 라고 말할 수 있을 때가 아닐까?



두번째, 우리가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을 나 자신이 실패자로 인정한다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상하게 " 성자 컴프렉스" 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성경이 우리를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씀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이 성숙을 향해 달음질하고 거룩함과 의에 이르기에 힘써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성경은 단 한번도 우리에게 실패가 실수가 없는 삶을 살라고 요구하신적이 없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가 범죄( 실수, 실패)할때에 죄를 서로 구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말씀 하신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주님을 믿어도, 주님의 거룩한 성도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실수를 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 Failure is an event, not a person" 실패는 하나의 사건이지 그것이 그 사람이 실패자이고 그리고 그 사람의 인격이 아니라는 문제이다.

하나님이 "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불리움을 받았던 우리가 흠모하는 다윗왕조차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는 삶을 살았는가...!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며 다윗에에는 우리에게 없는 하나의 심성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군가가(특별히 나단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것을 지적하엿을때 그것을 부인하지 아니하고 즉각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는 즉 하나님깨 I'm sorry for what I did !" 라고 고백하는 순수함이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실수를 하고 어떤 한 일이 우리를 영원한 실패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통하여 우리를 더욱더 의의 거룩함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째찍질 같은 역할을 함을 바라볼 수 있을때 우리는 비로서 우리의 실패나 연약함에 대하여 정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완벽주의는 병이고 그리고 그것은 불 신앙인 것이다.

왜냐하면 완벽하지 않은 존재인 자신을 자꾸만 완벽한 하나님의 위치에 자기를 올려 놓으니 그것이 불신앙이요 또 그러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때마다 그것을 포장하고 아닌척 위장하려니 얼마나 고통 스러울까...................?

나는 그 동안 그러한 삶을 내가 살아 왔음을 안다. 참으로 고단한 삶이다.

주님앞에 I am Sorry ! 라고 해 버리면 됬을것을 내가 아이들한테 잘 못을 할때 아빠가 실수했다 미안하구나 하면 됬을일을 그 놈의 자존심을 지키느라 버티느라 아빠로서의 체면을 더 구긴일이 얼마나 많은지 ?

당신은 실패를 받아 들이는가? 그것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성공을 향해 가는 하나의 징검다리임을 우리는 정말로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가?

실패를 자신의 인격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 들일때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일때 우리는 우리 안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세번째,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만큼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옷을 입는데도 편안함이 있다. 케쥬얼한 옷을 입고도, 자동차 문에 흠집이 있어도 정말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거에 그렇게 개의치 않지만, 가난한 사람일 수도록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서 더욱더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예민하리 만치 민감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몇년전 이곳 선교기관의 재단 이사장을 한국의 목사님과 만난 적이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만나는 첫 대면의 날인데 그 이사장은 픽업 트럭을 타고 작업복에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나타난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례하게도 볼 수 있지만, 그 사람은 사실은 뉴질랜드에서도 몇번째 안가는 백만장자의 대열에 있는 교회의 장로님이셨던 것이다.

함께 했던 목사님과 나 자신이 감동을 받았던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형식에 매이지 않는 그러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일 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관대할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 중의 더러는 너무도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한 사람들을 본다.

하나님이 나를 있는 모습 받으셨다는 성경의 진리는 하나의 지식에 불과하고 자신에게 하나님보다 더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적용하다 보니...결국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관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늘 못 마땅한 마음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당신은 " I am Sorry !" 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가 ?



연봉을 높이려면 오늘 부터 이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 미안 합니다. "

2010년 8월 30일 월요일

" 목사님, 빵조가리나 주네요........ 잼 하나 없네요 .....ㅎㅎㅎ!!

이곳에서의 4개월 훈련을 마치고 네덜란드의 컨퍼런스 센터에서 2주간의 오엠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선교사로 부터 짧은 메세지가 남겨졌다.

그래도 요즘은 참 좋은 세상이다. 이메일이고 그리고 짦은 페이스북을 통해 간간히 남겨지는 소통을 통해서 우리가 아직도 연결이 되고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내가 20년전에 오엠에 조인할때는 국제전화가 유일한 소통의 방법이고.....그리고 우편이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요즘처럼 통신의 혁명이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어제는 급하게 아무 생각없이 댓글을 달아놓았는데.......

그 밑에 제자하나가 그 밑에 댓글을 달아 놓았다. 일종의 항의성 글인것 같다.



이곳에서 훈련을 받을때 가장 막내였던 빛나였기에.......경상도 아가씨의 특유의 어감이 나를 늘 미소짓게 만들곤 하였는데.....

벌써 일주일이 넘게 생활을 하면서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빛나 선교사의 글이다.



" 목사님 ~여기 네덜란드 죙일 비와서 잼 없습니다,,
사실 백인들 겁나 많아서 적응도 잘 안되구요..ㅠㅠ계속 빵쪼가리 주고요
ICI가 천국이라고 또 말하게 되네요.ㅋㅋ
목사님 ~많이 보고싶어요~"



나는 그 밑에다 댓글을 달아 놓앗다.

" ㅎㅎㅎ 그 빵조가리에 고추장 발라 먹으면서 견뎌라......
토마토 소스라고 하면서 ㅎㅎㅎ"



사실 빛나 선교사의 짧은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말하는 그 어감을 고스한히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20년전 처음으로 네달란드 De Bron Conference 센터에서 2주간의 수련회를 할때 나도 매일 나오는 서양식 음식에 매일 먹는 빵이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빛나의 그 말이 불현듯 나를 20년 전으로 데려다 놓은 것이었다.

긴 줄을 서면, 정말 전 세계에서 온 유럽의 선교사들이 줄을 서서 말을 걸고........

누군가 미소를 짓고 말을 거는게 왜 그렇게 부담스럽고 어려웠던지.......그래서 사람들이 다 먹고 나갈 무렵 일부러 늦게 식당으로 가서.....사람들이 많이 앉지 않은 구석진 자리를 찾아서 혼자서 ...그래도 같은 한국 선교사들을 만나면 안심을 하고 식사를 하던 그 시간들이 불현듯 떠 올랐던 것이다.

매일 먹는 빵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는데 누군가 꼬불쳐 놓은 고추창을 무슨 보물단지 모양으로 남이 볼세라 빵에다 발라 먹으면서 향수를 달래던 1989년 8월의 데브론 수련회를 나는 잊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속으로 밥먹을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밥먹을때만은 영어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혼자 구석진 곳을 찾아서 식사를 하던 생각이 난다.

빛나가 목사님 여기 백인들이 겁나게 많아서 적응도 안된다는 말이 나는 100% 감으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세계 선교를 한국에서야 목이 터져라 이야기하고 하나님이 한국의 젊은이들을 놀랍게 쓰실 것입니다" 라고 큰 소리 빵빵치고 천장이 떠나갈듯 통성소리를 해 댔던 우리지만...막상 정말 전세계의 사람들이 메이저 그룹으로 모여 있는 선교현장에 우리가 있을때 우리가 왜 이렇게 왜소해 보이고 그리고 소외감을 느끼는지........



빛나의 " 잼 하나 없어요 " 뒤에 숨겨 있는 일종의 두려움, 영어에 대한 컴플렉스, 매저리티 그룹이 아닌 마이너리티 그룹으로서의 한국인 선교사, 비영어권 선교사가 느끼는 가장 리얼한 느낌인 셈이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쓰시겠다 하셔도, 우리는 아직도 넘어야 할 많은 도전과 장애물이 있는 것이다.



한국인 선교사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것중 하나는 음식이다.

서양 음식이 태생적으로 우리에게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웨스턴 푸드에 적증했다고 생각해도.....아무리 몇개의 빵조각을 집어 넣어도 밥과 찌게가 채워주는 포만감과 따뜻한 그 정서감은 빵으로 채울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기에.....

빵을 먹는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는 배고픔과 허기짐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은 양의 포만감이 아니라, 우리가 익숙해 있는 엄마의 손길, 고국의 손길, 내가 고국을 떠 나 있다는 외로움의 공백인 것이리라 믿는다.



두번째로 한국인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어려움이다. 현지에서 쓰는 어려움이 아니라, 선교를 주도해온 서구 선교사들의 그 주도권, 그리고 그 역할이 영어를 얼마나 하느냐 하는것에 달려있는 국제선교의 현실 앞에서 이제 막 선교를 시작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는 우리를 주눅들게 만드는 두려움이고 불편함중의 하나인 것이다.



세번째로, 개인주의 가족주의의 차이에서 오는 정서적 갭이 그것이다.

아무리 좋은 서양 선교사들을 우리가 친구로 가져도 마치 친형제 처럼 자매처럼 보살피고 느끼는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늘 우리라는 정서적 공감대속에서 둥지를 틀고 살아야 하는 우리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이러한 시간이 호락호락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아닌 것임을 나의 경험을 통해서 생각해 본다.

" 잼 하나 없어요........ 그 하나의 말이......웃음뒤에 짠한 애잔함이 내 가슴속에 뭉클하고 솟구치는 것은 어린, 아니 나의 후배 선교사들이 걸어야 할 그리고 그들이 시작해야할 선교사로서의 여행의 시작의 서두임을 알기에..................

내 미소 뒤에 그들을 향한 나의 동지애적, 그리고 선배로서의 동질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군가 눈물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고서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가 ? " 그런데 나는 누군가 고추장을 바른 빵을 먹어보지 않고서는 선교를 논하지 말라" 고 말하고 싶다.

나와 다름을 경험하는 첫 시간, 나의 익숙한 곳으로부터 떠나는 떠남의 시작, 그 여정의 서두에서 어린 빛나가 남긴 짧은 메세지 속에 묻어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빛나야 !!!! 고추장 바른 빵도 먹을만 하단다.

한국 선교사는 그 뜨거운 고추장처럼 뜨거운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기에 우리에게 넘어야 할 많은 도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란다.

네가 고추장을 딸기잼이라고 웃으면서 서양 선교사들에게 웃으면서 건넬 수 있을때 너는 긴 국제선교 속에서의 한국 선교사로사의 첫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란다.



" 빵조가리를 잘 먹을 수 있는것 ...... 그것이 선교의 시작이란다.

겁나게 많은 서양 선교사들 속에서 그 빵조가리를 먹어 주면서 그들을 섬기고 나중에는 리더해야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 세대에 한국 선교사들에 주신 사명이라면 그 빵조가리도 감사하면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랑하는 빛나야.............그 빵조가리.......나도 그렇게 먹어 봤단다.

고추장 발라서 먹은 빵조가리의 맛 그 맛이 어땧는지 다음에 애기해 보자꾸나 ㅎㅎㅎㅎ "

2010년 8월 29일 일요일

왜 우리는 사람을 양성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사람을 세워야 하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홀로 두시기를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누구나 모두에게 자신들이 존경하고 그리고 자기가 닮고자 하는 영웅(Hero)이 있다.

내가 누구를 존경하는가? 는 리더십 계발의 과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한다.
사람들은 역사속에서, 그리고 책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성취한 사람들을 존경하게 된다. 그들중 많은 사람들은 본인의 탁월한 능력을 통하여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이루어낸 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다음의 누구를 존경하는가?

 샘 월튼(월 마트 창업자)-
 빌 게이츠 같은 혁명적인 사업가?
 베에토벤 같은 불운의 위대한 음악가?
 마이클 조던이나 타이거 우즈 같은 유명선수 ?

 마를린 먼로나 톰 크루즈 같은 유명 연예인 ?

 알렉산더 대왕이나 징기스칸 같은 위대한 정복자?

 마이 퀴리, 토마스 에디슨, 아인슈타인 같은 혁명적인 과학자?

 윌리암 케리나 마더 테레사 같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 ?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우리의 역할대상으로 삼고 그들의 삶의 궤적을 닮기를 원하며 삶을 연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점은 우리가 존경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일의 영역에서 최고의 경지에서 오르거나 무엇인가를 성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미국인들은 개척가나, 불세출의 비스니스맨들을 좋아한다.

< 우리들 안에 숨어있는 람보 신드롬>

우리는 미디어가 투여한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속에 가만히 들어와 자리잡고 있는 한가지 공통적인 생각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도 위대한 일을 성취한, 그리고 성취해 가는 람보나 외로운 방랑자 (lone Ranger) 와 같은 모습을 닮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역사 어디에서도 그리고 성경의 어떤 곳에서도 한 사람이 어떠한 위대한 일을 이루어 낸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혼자 적군을 섬멸하는 람보 같은 인물은 실재의 인물이 아니다. 더욱이 기독교 리더십의 경우 더더욱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원리의 비밀을 의식하고 깨닫는 다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는 창조의 역사 가운데, 삼위의 하나님이 함께 일하셨음을 말씀 하신다. 삼위일체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나 설명을 미룬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미 그 자신의 성품과 속성을 통하여 함께 하는 함께 일하는 팀웍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어떤 의미 있는 위대한 업적이나 성과도 한 사람의 개인적인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

우리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이 아담을 잠재우시고 하와, 또는 이브를 만드시는 장면을 결혼의 의미에만 국한 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이 지은 창조의 대 서막뒤에 이름을 짓는 일을 감당함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특권을 누린다. 그런데 그 일을 이룬후에 하나님은 아담을 잠재우신 후에 그를 돕는 베필을 만드신다.
여기서 돕는 베필이라는 에세르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 전반에 나타나는 중요한 개념이다. 단순히 한 남자의 아내로서의 돕는 베필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케어하고 구하는 일, 친구를 돕는 일 이웃을 돕는 일에서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이 돕는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리더에게 사람을 양성 하도록 부르셨다>

중국의 격언에 “ 유능한 사람 뒤에는 유능한 다른 사람들이 있다” 라는 말이 있다.
즉 그 이야기는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들 뒤에는 항상 그들과 함께 했던 유능한 다수의 사람들이 늘 함께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와를 붙이셨고, 모세에게는 아론과 훌과 여호수아를 붙이셨고, 기드온에게는 300용사를 붙이셨고, 다윗에게는 3명의 다윗의 용사들과 수백명이 넘는 다윗의 사람들을 붙이셨고,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꿈과 비전을 이루어 갔던 점을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바울에게는 바나바를 그리고 후에 디모데와 실라와 그리고 루디아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은 다수의 사람들을 붙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이루어 갔음을 볼 수 있다.
성공적인 기독교 지도자의 생명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정검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나 스스로 혼자 이룰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재빨리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그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에 있다.

하나님앞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맡기신 일을 이루기를 내가 열망한다면 재빨리 돕는 자들, 그리고 함께 일할 자들을 구하는 기도를 하며, 자신이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일할 수 있는 자로 리더 자신의 생각의 유형과 성격, 그리고 소통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계발하는 일을 통하여서 혼자 스스로 누구의 도움없이도 일을 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서부터 깨어 나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 리더들에게 주신 절대절명의 사명은 사람을 양성하는데에 있다. 모세는 평생을 통하여 여호수아라는 젊은 믿음의 용사를 지도자로 양성하는 일을 통하여 그에게 맡기신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는 일을 감당하였다.
예수님은 3년간의 공생애 전 생애를 통하여 12명 더 깊이 나아가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라는 제자를 길러냄으로써 아버지가 그에게 맡기신 세상을 구속하는 구속의 사역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셨던 것이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7명의 신실한 일군들을 양성하고 길러냄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게 하였고 사도바울은 그가 교회를 세우고 가는 곳곳마다 말씀으로 그들을 양육하고 육성함으로써 장로들을 세우는 일을 통하여 지도자만들기의 모형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만일 당신이 혼자 당신의 교회에서 선교지에서 또는 온갖 유형의 사역의 현장에서 당신이 없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면서 불평을 하며 그리고 내가 얼마나 위대하게 이 일들을 수행하고 있음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하나님이 그대에게 맡긴 가장 주용한 소명을 불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지도자라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람을 양성하시도록 부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있느냐? 를 더 관심을 갖고 계시는 영역이다.

당신은 지금 사람에 집중하고 있는가?

2010년 8월 26일 목요일

예수님의 리더십

요즘 리더십에 관한 정보들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다.

101가지의 리더를 만드는 매직같은 원리를 알려주는 지침도 있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처럼 리더를 만들어 주는 정말 신통한 법칙을 말하는 책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최근 특별히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독교 리더십에서 우리는 다양한 이론과 접근을 우리가 볼 수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리더십의 모델을 보여 주시는 분은 다름아닌 예수님이신 것이다.



오늘 오전 리더십과목을 수강하는 우리 학생들과 리더십의 여정,발전" 에 대한 것을 공부하는 가운데 공동묘지를 아침에 방문하였다.

사실 과목의 과제는 자신이 죽었을때의 비문과 나의 장례식에서 와서 참여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조문을 작성하는 것이 과제였다.

약 한시간 가량을 묘지를 다니면서 그들이 살았던 비문을 읽는 것은 실로 엄숙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로는 태어난지 3일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80년, 때로는 39년, 19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왔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날때는 순서 없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87년도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오엠에서 함께 섬겼던 루디의 묘를 찾아가 조의를 표하였다.

참으로 신실한 형제가 아닐 수 없었는데........

그는 정말 꽃 다운 나이에 일찍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것이다.

그의 묘비를 만지며 내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가 오늘 있을 수 있다면 하는 관절한 바램으로.......



그러면서 오늘 주님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하여 주었다.

마치 무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묘비를 보면서 알게 된것은

사람들은 참으로 제한된 시간의 범주안에서 살아 간다는 것이다.

때로는 90년, 80년 또 70년 가슴 아프지만 15, 30대의 나이로 정말로 아무런 순서없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산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제한된 시간의 범위를 안고 살아간다.



나는 예수님의 리더십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에게 나타난 가장 중요한 특성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첫번째, 예수님의 리더십은 제한된 시간에 대한 긴박하고 간절한 의식이 주님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1963년에 태어나서 1998년에 운명을 달리 한것처럼.....

우리 모두는 다 제한된 시간( The limitted Time of Frame)시간 안에 살 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생애를 요약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보내신 일을 하는 삶"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의 양식은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이것이니이다" 라고 말씀 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를 알고 계셧다.

그러기에 그 분의 삶의 하루 하루는 정말로 긴박하고 절박한 인식으로 점철 되어진 삶이었던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의사로 부터 이제 6개월밖에 더 살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면 당신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내가 믿기로는 이제 남은 6개월은 일분 일초가 너무나 소중하고 절박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가장 의미있고 전략적으로 사용하야야 하는 긴박함의 결정이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응집된 그 삶에서 나온 그 엄청난 힘의 근원은 바로 이 주어진 제한된 시간에 대한 주님의 절박한 인식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우리에게 만일 주님과 같은 이런 절박한 제한된 시간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삶은 분명한 목적을 성취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둘째, Awareness of purpose of Life.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가? 를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그 절박한 제한된 시간의 인식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즉 분명한 목적을 성취하는 삶을 살게 하셨다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당신은 당신의 삶의 목적을 아는가?

주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 언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고 계셨던 것이다.



세째로, 주님의 또 다른 모습은 주님은 바로 집중된 선택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즉 Focus 집중인 것이다. 그리고 그 집중은 가치 Value를 선택하는 삶을 사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12명의 제자를 선택하셨다. 그는 제한된 시간을 아셨고 그 제한된 시간속에서 사명(Purpose)을 이룰려면 정말 선별된 집중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성공한 많은 리더들의 모습속에서 나타나는 것은 그들은 정말로 집중의 힘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세상에서도 성공하는 사람들은 이것 저것을 다재다능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가지 일을 집중하여 최고의 가치를 창출할때 더 많은 성공의 확률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을 구속하는 그 일을 위해서도 그분은 12명의 사람들에게 집중하였고 그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들, 개인인가를 인식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역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 그리고 내가 선택하여 집중된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키워야 할 것이다.



넷째로, 예수님의 생애의 마지막 사역은 친구를 만드는 사역이었다.

에수님은 제자들의 최고의 스승이셨다. 스승인 예수님은 최고의 권위를 가지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시기전 유언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 이제는 내가 너희를 친구하 부르시겠다" 말씀 하신다.

아 얼마나 놀라운 통찰일까?

리더십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그들은 솔로 퍼포머 즉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해내는 만능" 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가 삶을 투자하고 그리고 훈련하였던 그 제자들을 자신의 친구라고 선포 하신다는 것이다.

리더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주변에 친구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Accountability Group이라 칭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연약함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품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어떤 재질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가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리더는 사역의 열매로 자신과 함께 삶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공동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제부터 내가 너희를 나의 친구" 라 부르시겠다고 말씀 하신다.

당신은 예수님의 친구 입니까?

예수님이 당신을 의탁할 만큼, 당신은 예수님과 가까이 게십니까?

주님은 당신의 친구를 원하십시다.

2010년 8월 12일 목요일

" 여기 소가 있습니다. ....??

모든 선교사들이 열정을 갖고 사역지로 나아 간다. 때로는 사역지에서 겪을 충격과 그리고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배움의 값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도 가늠하지도 못한체 처음 선교지로 나아가는 선교사에게는 그 가슴속에 부푼 꿈과 이상 그리고 당찬 야망(비록 선한 야망이라 해도 나중에 그것은 정말 허황되고 당차다 하겠다.)을 안고 선교지로 나아간다.



나도 예의는 아니었다. 국제선교단체에서 그 전년 까지만 해도 다른 사역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받지도 않았고 사무실에서 조차도 바로 첫해에는 바로 터키로 들어갈 수 없다는 협박(?)을 들으면서 나는 내심으로는 그렇지만 하는 당찬 용기를 갖고 다른 필드를 거치지 않은 첫 케이스로 들어간다는 자부심마저 가진체 터키로 들어갔다.

국제팀이니 당연히 영어로 생활해야 하는 어려움 그래도 조인할때는 통역을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얄팍한 실력을 믿고 나는 잘 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었다.



언어학교에 등록을 하고 마치 입학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언어학교로 가는 날을 기다리며 부뿐 기대감으로 조바심을 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너무나 쉽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바로 내가 사는 싱글 숙소, 즉 우리가 세들어 사는 아파트 앞동에 대학을 다니는 청년이 있었고 얼마나 친근한지 그리고 조금 영어로도 소통이 되니 금상첨화였다.

그래서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되기를 다짐하고 터키어를 배우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였는데 순수히 오케이 였다.

그래서 생존을 위한 터키어 예습을 진행하였다. 언어학교에 가는 법, 버스 노선과 버스를 타고 내릴때 요령....

옛날 어린시절 승합차로 불렸던 조그만 미니버스가 마치 택시처럼 다니는 노선 어느 곳이든 손님이 내리고 싶은곳에 승하차를 할 수 있는 정말 자유 백배의 재미난 교통수단이었는데 터키어로 "돌무쉬" 라 불렀다.



앞집 청년은 친절하게도 종이에 써 주어가며 내가 내릴 곳 앞에서 운전 기사 아저씨에게 이렇게 외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 브라다 이넥바~르 " 몇번을 연습을 하였으니 발음에도 자신감이 붙고 드디어 이제 나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통학을 하는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내가 동료 선교사가 안내해주어 오고 갔던 낮익은 지형지물들, 내심을 긴장을 하였지만 내가 점찍어 주었던 건물이 눈앞에 보이고 나는 내심 안도의 숨을 내 쉬며 아주 여유로운 목소리로 운전기사를 향해 외쳤다.

"브라아 이넥바~르" 그런데 무슨 일인가? 순간 버스안에 있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고 버스안에 있었던 아줌마들 그리고 터키 아가씨들이 싱긋이 나를 보고 웃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무엇이 잘 못 되었구나 하고 직감적으로 눈치를 챘다. 이미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빨개져 있었다.

첫 날 수업을 하는 내내 수업이 집중이 안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아무튼 허둥지둥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디크멘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올라타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 아파트로 가는 방향에 조그마한 슈퍼가 보이고....그래서 나는 다시 그러나 이번에는 얼버무리는 목소리로 다시 기사에게 외쳤다.



" 브라다 이넥 바~르 " 이번에도 버스에 있는 사람들의 미소,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뒤 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도망치듯이 들어갔다.

뭐라 그럴까? 조롱을 당한 느낌, 그리고 창피함, 낭패감, 그리고 속에서는 화도 끓어 올랐다. 도대체 무엇인 잘 못된 것일까?

하지만 창피해서 누구에게도 물어볼수도 없었다. 적어도 대학을 졸업하는 선교 훈련을 받고 온 그리고 선택받은(?) 소수의 한 사람 이었던 나인데................

하지만 궁굼함을 떨칠수가 없었고 그리고 당장 내일이 문제였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멕시코에서 온 내 룸메이트인 선교사에게 자초지종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가 연습했다던 문장을 다시 읊조렸다. " 브라다 이넥 바~르" 한 단어 단어에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자 마자 내 룸메이트인 선교사가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설명을 하였다.

즉 터키 청년이 가르쳐준 문장에 단어 하나를 트위스트 한 것이었다.

즉 이네젝(Inneck) 이라는 동사가 영어에 Get off, 내리다 라는 말인데 정말 한끝 차이로 바뀌치기 한 단어 내가 그렇게 자신있게 외쳤던 Innek 이라는 말은 " 소" 라는 명사였던 것이다.

알파벳도 모르고 터키에 온 햇병아리인 내가 알턱이 없었다. 즉 나는 저 여기에서 내려요 " 라는 말 대신 " 여기에 소가 있습니다.

" 저는 소입니다" 라고 외쳤던 것이다. 멀쩡하게 생겨먹은 외국인이 그러고 너무나 자신있게 외쳐 댔으니 그들에겐 얼마나 재밌었을까?

아뿔싸.............!!!

하지만 이것은 내가 그 후로도 내가 범해야 했던 수 많은 실수들의 서곡에 불과한 것이었다.

유난히 완벽주의자 였던 그리고 소심하고 열등감이 많았던 내가.......부푼꿈을 안고 첫 선교사의 관문인 언어학교를 가는 날 보기좋게 망신살을 당했으니..............이 창피한 애기를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아스라한 20여년전에 일이다.



되돌아 보니..........우리는 실수를 하는 것이 은혜다. 또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이 은혜임을 요즘 조금씩 깨 닫는다.

우리에게 실수가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내 삶에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존재를 인정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요즘 영어로 강의를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콩글리쉬를 한다.

이놈의 영어는 쉬운듯 하면서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이다.

이제 열살밖에 안되는 내 아들놈이 가끔 가다 내 영어 발음을 갖고 문법이 틀렸다고 가르쳐 주겠다고 거드름을 피울때면 은근히 속으로 부아가 난다.

유치원에 갈때는 한 마디도 못해서 Toilet 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외우게 해서 보냈건만.........

대학생 이었던 시절 한때는 나는 현지에 가서 살면 한 일년이면 그리고 영어권에서 한 6개월만 살면 다 통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당찬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호기인가를 절감하지만.....사람이 착각속에 산다고.....넘어지고 깨어져봐야....안다고....

오늘도 후배선교사들을 가르치면서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본다. " 이 놈들 중에도 사역지에서 산지가 얼만데 아직도 영어를 저정도로 밖에 못할까 ? 라고 속으로 팔짱을 끼고 비평할 녀석들이 있겠지."

아직도 못되 먹은 심보가 내 속으로는 " 그래도 너희도 한번 소가 되봐라 " 그러면 네 꼬라지를 알게 될테니까...." 물론 그것은 순간의 생각이고 나는 그들이 앞으로 경험하고 넘어가야할 그 일들을 생각해 보게 되면 가슴이 짠하게 아파 온다.

오늘도 수많은 선교사들이 부푼꿈을 안고 선교지로 나간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그래 많이 실수 하고 많이 절망해 봐라............그러나 절망만이 있는게 아니라 그 절망이 있기 때문에 은혜를 경험하는데............나는 후배들에게 늘 이렇게 당부한다. " 여러분 똑똑한 선교사 되지 말고요......선교지에서 오래 버티는 선교사가 되세요..........그러면 뭔가 길이 보일 겁니다.

그렇다. 만일 내가 그때 더 실수를 두려워 하지 않고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 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없었다면........

소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실수를 참 많이도 했다. 아니 지금도 나는 실수와 허물 투성이고 실패하고 넘어진다.

하지만 깊은 절망의 신음 속에 있을때 내게 들려 주었던 나의 영국인 리더의 말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 Johnny, You must remember that God is much bigger than your mistakes, God is not like a police men. He is our Father and our Helper."

그렇다. 나는 오늘도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 그 말을 되 새기어 본다.

내 하나님은 내 실수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나의 도움을 주시는 내 아버지 임을..................."

졸업식을 마치며..........

어제 저녁, 지난 4개월 동안 진행됬던 오엠 선교사들의 훈련 프로그램인 ICC(Inter Cultural Communication) 졸업식이 있었다.

이번 졸업식은 예년과 정말 다른 졸업식 임을 느낀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더욱더 차분하고, 더욱더 비장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너무나 은혜롭게 진행되고 끝날 수 있다는 자체가 내게는 하나의 은혜의 경험이었기 때문 인지도 모른다.

오엠 20주년 행사로 한국에 들어가 있을 때, 아내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프로그램을 전담하던 김 목사 가정이 계속되는 Depression으로 한국으로 요양을 필요로 하고 한국으로 귀국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창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가운데, 내가 달리 취할 어떤 방도도 없음을 안다.

그래서 급하게 귀국할 것을 이야기 하고, 나는 짧은 한국의 일정을 마치고 센터로 돌아왔다.



내 마음은 센터의 건축문제며, 센터 인수에 대한 재단과의 끝임없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그리고 아내로 보고 받는 끊임없는 재정난의 어려움, 아내는 이미 벼랑끝에 서있었고, 신경은 바늘끝 이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한동안 정말 망연히 창문밖을 응시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입술에는 짧은 탄식의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 하나님 과연 올해 이 프로그램을 할 여력이 될까요? 어떻게 또 이 젋은 사람들과의 싸움(?)을 치뤄야 하나요......도와 주세요.....!"

재정문제와 재단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내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포기하는 것이 최선의 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김목사가 지난 3년동안 그래도 큰 힘이 되었는데, 준비를 하다보니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자료를 찾는 일로 메일을 보냈을 때 김 목사는 사실은 외부와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공항에 선교사들이 도착하는 날,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미리 나온 선교사들에게 모일것을 지시하고 급하게 기도하라고 지시를 하였다. 나도 공항 출구문을 바라보며 눈을 뜨고 기도하였다. 하나님 이들이 아무일 없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그리고 얼마후에 이민성에 오래동안 머물러 있던 선교사들이 나왔다. 팀 리더로 오면 보명 전도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제는 방문비자로 입국하는 사람들도 매우 까다로와 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중 누가, 뉴질랜드 들어오는 것조차 어려운 것은 아마도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 같아요...!"

나도 그 말에 동의를 하였다. 선교사로 사는 순간부터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주권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것이 오엠 선교사들과 첫 대면 이었다.

무척이나 어수선하고, 이들도 얼마나 많이 놀랐을까.................?



이들의 입국 날자와 학교 텀과의 차이로 인하여, 첫 2주간은 학교는 방학 기간이었고, 그래서 2 주간의 인텐시브한 Mission Perspective Course 수업을 시작하였다.

영어가 안되는 이들이, 도착하자마자 충분한 휴식도 없이 오전내내 진행되는 영어강의는 어쩌면 너무나 힘든 일임을 안다.

하지만, 이들이 앞으로 사역지에서 겪어야 할 일이기에, 나는 기도 하며 진행을 하였다.

2-3일이 지난 날, 한 형제가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강의를 정말로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어가 너무 기초가 안되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른다고 하소연을 하는 셈이다.

형제에게, 선택은 두 가지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과, 힘들고 어렵지만 끝까지 하는 방법 둘 중에 다른 대안은 없다" 말 하였다.

형제의 얼굴은 너무나 경직되었고,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형제를 사무실에서 내 보내고 나니 20여년 전의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영어를 그래도 한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수련회 기간동안 쏟아지는 메세지를 정말로 알아 듣기 힘들어........

혼자 수련회장 주변을 산책하며, 한 없이 울면서 기도 했던 생각이 났다.



어쩌면 이것은 한국 선교사들의 숙명인지 모른다.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내가 약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나는 혹독하리 만치 강의를 평상시처럼 진행을 하였다.

얼굴을 들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는 선교사, 얼굴이 다들 사색이 되어, 웃는 얼굴을 볼수가 없었다.

키위 스탭들은 너무 무리가 아니냐고 내게 말을 하였다. 그리고 강의를 알아 들을 수 없는데, 과연 이 세미나가 얼만큼 도움이 될까 ? 하고 약간의 의심을 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그 분의 놀라운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선교사들의 눈에 고이는 눈물을 보았다.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들으며,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구약에서 부터 신약의 마지막 장까지 흐르는 구속의 놀라운 계획을 들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할 수 있었고, 나의 가슴도 다시 벅차 오르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양의 독서과제와 숙제, 방대한 양을 소화해 내야 하는 코스지만, 이 과정을 통해, 왜 우리가 선교를 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훈련 프로그램이 이제 끝에 와 있다니.

작은 변화들이 눈에 보이는 것이 너무 감사했고, 건강하게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이들이 4개월을 견뎌준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특별히 3주간 진행됬던 3주간의 정말로 Hard Training 이었던 전도여행은 이들이 지금껏 교실에서 배운것을 실전에서 경험해 보는 시간이었다.

교인 8명 정도 밖에 안되는 아죽 작은 타운에서 우리 훈련생들만 남겨 놓고 나는 전적으로 이들이 프로그램을 짜고, 전도하는 사역을 하도록 하였다. 추운 겨울인데도 나는 이들을 교회에서 슬립핑백을 덥고 자도록 하는 정말로 힘든 전도 훈련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들이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하고 영혼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오클랜드와 Te Awamutu 지역에서 진행된 Door to Door 사역까지,정말로 숨가쁜 시간이었다.



Waihi 크리스천 캠프에서, 1박 2일간의 수련회를 통해서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자정이면 끝날 줄 알았던 나눔이 새벽 5시가 넘도록 진행이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 속에서 나는 정말로 아름다운 주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변화들이 이들에게서 일어 났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졸업식은 많은 지역교회의 친구들이 참석을 하여 이들을 격려하여 주었다.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이날 선포되어진 메세지, Never Give up ! 이라는 초청선교사님의 말씀은 나를 향한 말씀 같았다.



정말 아쉬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몇년간을 수많은 이별을 하는데도 복받쳐 오르는 눈물은 어찌할 수가 없는 것 같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1992년말 처음 훈련 사역을 시작할때 내 훈련생들 중에는 형님뻘 되는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이제는 훈련생들이 정말 나의 자녀 같은 연령대로 바끠어 간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아 참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이제는 하나님이 이들에게 아비와 같은 일을 하시기를 원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아버지의 마음 !!!!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 그리고 나는 이들을 향한 아비의 마음을 느껴 본다.

이제는 젊음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들의 싱싱한 패기와 그리고 유쾌함이 사랑스럽고, 그리고 이들의 발라함이 부러워 진다.

옛날에는 내가 무대위에서 그렇게 설쳐(?) 댔었는데 이제는 나는 뒤에서 미소를 머금고 박수를 보내는 그런 자리에 와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흘렀구나 !!!! 이제 토요일 일요일이면 각자의 사역지로 떠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정말로 한 없는 격려가 있기를 기도한다.

이제는 이들이 한없이 부러워 진다.

이들을 아직 섬길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2010년 8월 8일 일요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식욕은 살 수 없고,
약을 살 수 있으나 건강은 살 수 없다.
재미는 살 수 있으나 지속적인 기쁨을 살 수 없고,
친분은 살 수 있으나 친구는 얻을 수 없다.
하인은 구할 수 있으나 충성심을 살 수 없고,
여가는 얻을 수 있으나 평온함을 얻을 수는 없다.
십자가 목걸이를 살 수 있어도 구원을 살 수는 없다.

<안 가보그, 영국의 코미디언>



이 평범한 진리를 철학자나 교수나 종교인이 아니라 희극인이 깨달았다는 사실이 더욱 더 놀랍니다.

짧은 글이지만 내 마음으로 100% 공감이 가는 그러한 말 입니다.

실제로 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평범한 삶의 영역에서 자신을 컨트롤 하지 못하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가깝게는 나 자신도 때때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 얼마나 고통 스러워 하는 경험합니다.

나에게는 오지 않으리라 믿었던 사람들로부터의 배신,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절망스러운 실망등......

이것 역시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을 절감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모든 사람이 충성스러우리라 기대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도 정말로 자신의 일에 충성된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재능있는 사람은 찾을 수 있고 재능은 살 수 있지만 충성스러움을 살 수 없다는 이 평범함의 진리가 얼마나 처절한 현실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쉼은 물리적인 시간의 정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강에서 온다는 사실을 발 견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상을 떠나시기전 그의 제자들에게 "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라고 말씀 하셨는지 모릅니다.

오늘도 수없는 삶의 현장에서 마음의 평온을 잃어 버린 사람들이 가슴의 고통을 안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은 내 노력과 나의 간절함으로도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돕는 자선사업을 한다 할지라도, 수많은 병자를 고치는 일을 할 지라도 구원은 주시는 이의 은총의 선물이지 내가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은 나의 의가 될 수 없나 봅니다.

그래서 구원은 구원을 주신 이에 대한 감사함을 늘 열매로 얻게 하십니다.

그것이 어쩌면 기독교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예배" 일지 모르겠습니다.

감사 하기 때문에, 그의 은혜가 크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과 감사를 잃어 버리지 않는 것 ,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있어서의 예배일 것입니다.



돈을 통해서도 살 수 없는 그 구원을 내가 얻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간단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가슴속에 " 감사함이 있는 가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여전히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나는 분명히 구원받은 자 일 것이 분명합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코메디언이 우리에게 알려 준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웃음은 인간에게만 주신 감사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저는 동물이 웃는 다는 것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동물도 슬픔을 느낄 수 있지만 인간에게 처럼 환한 미소로, 통쾌한 소리로 감사의 기쁨을 표현하는 웃음이야 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선물 일 것입니다.



당신은 감사하고 있나요?

당신은 웃고 있나요?

2010년 8월 6일 금요일

베다니의 집처럼.......

어제는 우리 오엠팀들과 사역을 같이 하는 North End 교회의 요청으로 우리 훈련생들을 데리고 기도 모임에 참석을 하였다.

얼마전 교회 안에 있는 몇 몇의 사람들이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며 자발적인 기도 소그룹셈이다.

Door to Door 사역을 11년째 해오고 있는 게리 목사의 가정이 주축이 되어 여러명의 사람들이 이 기도 모임 가운데 함께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날은 프랑스, 중국, 한국, 인도, 그리고 마오리, 백인 키위 사람들이 함께 모인 다국적 모임의 기도모임이 되었다.



아마도 우리 오엠 훈련생들과 함께 한 시간들 속에서 교인들이 선교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는 게리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록 영어들이 부족하지만 그 들이 하나님앞에 순종하여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도 도전을 받은것 같다.

기도 모임 가운데 ICI 사역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한 짧게 ICI의 비전을 나누었다.

그리고 게리 목사의 말대로 오늘밤은 특별히 선교를 위한 기도를 하자고 제안을 하여 우리는 인도와 북한, 그리고 한국교회, 우간다. 프랑스와 그리고 뉴질랜드 교회를 위하여 기도 하였다.

프랑스를 위해 기도할때 가슴속 깊은 속에서 하나님이 아파하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기독교인이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정말로 믿기 어려운 이러한 상황이 얼마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타까운 것일까.....



그러면서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였다. 한국교회의 자고함을 회개하였다. 이제 선교사 2만 파송의 아직도 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30년이 넘지 않는 한국교회가 벌써 서서히 성장이 정체되어지고 서서히 선교의 열기가 식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혹 뉴질랜드 교회처럼, 그리고 유럽의 교회처럼 교회의 노령화가 급속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

가슴이 저며오는 고통을 느낀다.

이곳에 나와 있는 이 젊은 이들이 한국의 미래일텐데.......



자녀를 가진 크리스찬 부모들이 정말로 best의 자격을 갖춘 아이들을 선교사로 내어 보낼 수 있을때....한국교회는 하나님앞에 그 소명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모임이 끝나고 장소를 제공했던 집주인이 나를 따로 불러 교제를 하였다.

교회에 이 젊은이들이 왔을때만 하더라도 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하나님이 무엇인가 자기에게 말씀 하시는 것을 느낀다고 고백하였다.

사실은 기도 하면서 커다란 라운지, 그리고 방이 아마도 7-8개는 족히 되어 보이는 그리고 넓은 마당을 보면서 속으로 " 하나님 이런 시설이 선교사 재충전 프로그램을 위한 숙소로 쓰여지면 참 좋겠습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미친것 같다.

아는 집사님은 옆에서 그 동안 내가 기도로 씨름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 목사님 이제 선교사 안식관 뭐 그런 이야기 하지도 마십시오"

그런데도 나는 미친 생각을 해 본다.

일반 개인도 이렇게 커다란 집에서 생활을 하는데.........수많은 선교사들이 지치고 힘들때 와서 재충전을 받고 나아갈 수 있는 선교사 케어센터가 있어야 하는 것 이 아닐까.................

그래서 성경을 공부하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그들의 상처를 어루 만질수 있는 그런 상담의 장소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요즘 계속 가슴속에 남는다.

어쩌면 내가 이 일을 못할 수도 있겠지.......하지만 오늘도 사역지에서 고생하는 선교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며오는 아픔을 느낀다.



이본이라는 집주인과 함께 교제를 하는 동안 게리 목사가 다가와.....앞으로 ICI와 좀더 긴밀한 교제와 연합의 기도를 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고백한다.

아마도 성령님이 동.서를 묶어 함께 연합하는 모습을 보시기를 원하시는 지 모르겠다.

게리 목사에게, " Let us see how God is leading us into !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우리 보십시다" 라고 말하였다.



내가 얼마나 기도해 왔던 것이었을까.....! 지역교회가 함께 연합을 할때....ICI의 사역은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되리라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또 다른 기적을 베푸시는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베다니에 예수님이 가실때마다 머무셨던 마리아와 나사로의 집처럼......선교사들이 힘들고 지칠때마다 와서 쉴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며 간절히 간구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