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6일 월요일

" 더러는 의심하는 자들도 있더라 " ....

- "선교사의 소명을 어떻게 받으셨나요? " -

꽤 수년전의 일이다. 터키에서 사역을 하던 중 복음전도의 혐의로 경찰에 체포가 되어 구금이 되었고 그리고 급기야 나는 추방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럴 때 우리 오엠의 태평양지역 책임자였던 " Allan Adams " 선교사의 권유와 오엠 코리아의 요청으로 오엠 본부에서 선교사 훈련원 사역을 하던 때다. 그때만 해도 한국교회가 모슬렘 선교에 아직 이해가 부족한 때였고 아직도 모슬렘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숫자가 아주 작은 그런 시절이었다.

사실 뼈를 묻겠다고 터키로 갔던 내가 그렇게 빨리 한국을 돌아올 줄은 생각을 못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왜 내가 국내에 들어와서 선교사 훈련이라는 일을 해야 하는지 조금은 혼돈 스러운 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서히 나는 그 일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더 많은 한국의 젊은이 들이 복음을 들고 열방을 향하여 나아 가기를 원하셨고 그리고 모슬렘권을 향하여 나갈 선교사들이 요청 되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급하셨기에 나같이 선교경험이 미천한 나를 선교사 훈련이라는 막중한 일을 시키셨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선교사 훈련원을 맏으면서 나는 우리 훈련생들에게 이슬람권 선교의 필요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었고 또 선교한국의 조직위원 으로서 일을 하면서 나는 대학이나 그리고 교회 선교단체의 수련회 등지에서 선교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졌고 그럴때 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터키 경험을 이야기 할 수 있었고 그리고 모슬렘권 선교의 필요성을 나누게 되었다.

때로는 가끔 수년이 지나 " 선교사님의 강의를 듣고 이슬람권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또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노라고.... 그 중의 더러는 터키에서 사역을 하고 있고 나보다 더 오래도록 뿌리를 박으며 이제는 전문인 사역자로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들을 보노라면 ...아...어쩌면 하나님은 나를 이일 때문에 나를 그렇게 빨리도 한국으로 불렀었나 보다 하고 스스로를 위안해 보기도 한다.

훈련원 사역시절 나는 우리 선교훈련생으로부터 또는 교회나 선교단체의 학생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받던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도 모든 선교사들이 직면하는 진지한 질문일 수도 있고 또 확인되어야 할 중요한 이슈가 아닐까 믿는다.

" 선교사님, 선교사님은 어떻게 선교의 소명을 받으셨어요? 그리고 어떻게 선교사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확인 하실 수 있으셨어요?

그리고 많은 이들은 이 소명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때문에 수년을 결단하지 못하고 그들이 기다리는 하늘로 부터의 주님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야 왜 많은 선교헌신자들이 우리의 귀한 주님의 자녀들이 그 소명을 확인하기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기다리고 확증을 받기를 원하고 또 소명에 대한 성경적인 오해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는 지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소명 ! 특별히 선교사로서의 소명은 아주 특별한 부르심이 아닐 수 없고 의심할 여지 없이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 소명이 불확실하면 선교지에서 많은 이들이 그들이 닥치는 어려운 순간에 흔들리게 되고 급기야는 사역을 포기하고 중도에 들어오는 중도 탈락자의 대열에 합휴하게 되기 때 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은 소명을 어떻게 이해 하고 있는 것일까?

선교 소명에 대한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이해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1. 다메섹 도상의 환상 -

어떤 이들은 (그것이 성경적인 사실이고 그것을 뒷받친 한다 할지라도) 선교사는 바울이 경험했던 것과 같은 아주 특별한 환상, 비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성경의 패턴은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을 부르실 때 이러한 개인적이고도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에스셀이나, 다니엘이나, 그리고 에레미야나 요엘과 같은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러한 전적인 특별한 영적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로 부르심을 받게 되어 지는 것을 보게 된다.

바울은 신약에 있어서 이러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우리가 열두제자의 부르심의 사건을 생각해 볼때면 바울의 경험한 다메섹상에서의 부르심은 신약에 있어서도 매우 특별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2. 마게도니아의 환상 -

바울은 어느날 환상을 통해서 " 와서 도우라 " 고 말하시는 마게도니아의 환상을 보게 되어진다.

때때로 나는 다른 선교사님들의 간증을 들을 때 마게도니아의 환상처럼 기도 가운데 또는 꿈을 통해서 자신이 가야할 선교지 사람들을 생생하게 보게 되고 나중에 그 환상에서 보았던 이들을 다른 매체를 통해서 확인하게 되면서 자신들을 그 나라 또는 그 민족으로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을 확인하고 환신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만일 우리에게 이러한 경험이 있다면 얼마나 더 분명하고 흔들림 없이 선교사역에 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3. 지상 위임 대명령 ....

수년전 내가 만났던 미국 선교사님이 계셨다. 그는 북부아프리카에서 근 30년 가까이를 사역하셨던 베테랑급 선교사 였다.

내가 그 분에게 동일한 질문을 드렸던 생각이 난다. "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리고 어떤 확신을 통해서 선교사로 헌신하시게 되었습니까? "

그런데 나는 그 분으로부터 아주 뜻밖의 답변을 받게 되었다. " 주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하나님의 거듭난 모든 제자들에게 마28:18-20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모든 민족과 열방으로 나아가서 복음을 증거하고 제자삼는 일을 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보다 더 큰 명령이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 명령앞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성경을 보면서 이 말씀을 들었고 또 믿었고 그때 이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말씀에 순종하여 선교사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

그분은 30여년이 넘은 사역 시간 동안 한번도 자신의 소명에 대하여 흔들려 보거나 의심해 본 적이 없으셨다.

즉 전도와 선교에 대한 부르심은 명령이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 ! 얼마나 명쾌한 고백인가 ? 우리는 이 선교사님의 고백을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경청 해야 하리라 믿는다.



4. 나의 신앙의 여정 -



종종 선교훈련생들과 사람들이 내게 선교의 소명에 대한 질문을 하곤 한다. " 송 선교사님은 어떻게 선교사로서의 부르심을 받으셨나요? "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면 참으로 많이 망설여 질때가 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바울과 같은 드라마틱한 회심을 통한 특별한 부르심의 경험도 없었고 또 마게도니아 환상과 같은 특별한 영적인 체험도 내게는 없기 때문에....때로 내 간증을 듣는 이들이 혹여나 그들의 기대하며 듣고 싶은 그런 특별함이 없어 혹 실망(?)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 대답을 하기에 나는 나의 인생의 여정의 한 부분을 나누는 것이 더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1) 나의 신앙의 첫걸음

나는 중1 시절 친구의 전도를 받아 교회를 처음 나가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를 입학했을때 아버님이 병환에 누워 계셨다. 내가 세상에 나왔을때 아버지의 연세가 이미 54이셨기에 막내에다 늦둥이인 나는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듣뿍 받고 자랐던 것 같았다.

나의 유년시절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어떤 영적인 갈급함도 또 진지한 인생에 대한 어떤 사색도 없는 그 야 말로 천진난만하게 놀기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그런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한 나에게 아버님의 죽음은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변화시켰다.

오랜 병환으로 가게는 점점 기울어 졌고, 그러면서 우리는 운영하던 가게와 여관을 처분하고 아버님이 쉬실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고 그리고 중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던 것이다.

가을 어느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길 친구와 함께 막 집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골목 중간에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장의사의 부고 등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친구에게 " 누가 돌아 가셨나봐....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 장의사 등은 바로 우리 집 대문 앞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들어섰을때 이미 병풍으로 가려지 아버님의 시신과......촛불과 향불이 피어져 있었고 실신직전의 아주 놀람과 슬픈 표정을 하고 계신 엄마의 모습만이 내 눈앞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느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버님의 죽음은 지금도 내게는 지워지지 않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장례를 치르고.....나는 몇개월을 불면증에 시달렸다. 늦은 저녁이 되면 마치 아버지가 아직도 살아 계셔서 방에 계실것 만 같은 그런 생각.........그것은 너무나도 생생한 착각이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아니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득 덮기 시작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옥과 천국은 있는 것일까? 만일 한번은 죽는 것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옮은 삶일까?

어느날 수업시간에 나는 루이제 린저라는 작가가 쓴 " 왜 사느냐고 묻거든?" 이라는 책을 읽다 영어 선생님한테 걸려 야단을 맞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죽음 뒤에 대한 영원한 세계에 대한 절박한 궁금증은 더 해 가기만 했다.

불교나....몰몬교...그리고 인도 철학서적도 뒤적여 보기도 하고 나는 어리지만 정신적인 구도자였던 것이다.

그런 나를 학교의 친한 친구가 지속적으로 교회로 나를 인도 하였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교회가 체육대회를 하는 날을 계기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고.........딱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정말 개인적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기전임에도 꽤나 열심히 교회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 같다.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점점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역사적인 존재성에 대한 의문과 그리고 믿음의 점진적인 구도자의 삶이 지속됬던것 같다.

그런나를 주님은 중학교 3학년을 마치는 시점에 만나 주셨다. 공원에 전도를 나온 전도자를 통해서 오늘 학생이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영적 단계에 도달하셨습니까?

그 질문은 나를 두려움과 그리고 나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했고 깊은 사색을 하게 하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성경을 알아야 한다고 믿었다. 때마침 로마서를 공부하는 성경공부 그룹에 참여하게 되고, 많은 기독 서적들을 통해서 근본적인 나의 신앙의 의문점에 답변을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롬 5:8 절을 통해서 주님은 나를 만나 주셨다. 그토록 하나님의 사랑과 죄 용서함에 대한 확신을 갖기를 기도했는데....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미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음을 너무나 분명하게 깨닫게 되고 믿어지게 되었다.

그 때 정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그후로 나는 단 한번도 나의 구원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죄를 위한 주님의 희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2) 고등학교 시절- 나는 예수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고2때 나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내에서 신앙운동을 일으키기로 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이니 우리도 12명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무대가 갈릴리이니 갈릴리 선교회란 이름으로 명칭을 짓고 활동하였다. 우리의 기도제목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학원복음화와 성남시의 학원복음화였다. 보잘것 없는 우리들이 참 꿈은 크게 가진것 같다.

1980년 한국에는 대학생선교회(C.C,C)를 중심을로 민족복음화" 운동이 한참 전개되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나의 신앙성장을 위한 갈망 때문에 정동에서 모이는 고등부 모임에 나가고 있었다. " 나는 찾았네' 라는 케체 프레이지로 정말로 대대적인 그런 전도 운동이었다.

나의 마음에도 그런 소망이 불타 올랐다. 그래서 우리 갈릴리 선교회를 중심으로 성남시 한원복음화를 위한 전도대회를 하자고 제안을 하였다.

실로 맹랑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John Knox의 기도처럼 " 하나님 우리에게 성남을 주십시오 " 하고 기도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성남시에 있는 모든 교회 학생부 회장들에게 서신을 발송했다.

성남시 청소년 복음화를 위한 준비모임을 열자는 것이었다. 장소가 필요했다. 그래서 성남에서 그래도 제일 큰 교회건물을 갖고 있었던 성남제일교회의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뵈었다. 그리고 우리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교회를 모임 장소로 썼으면 한다고 요청을 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목사님이 꽤나 황당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목사님은 흔쾌히 허락을 했고 그리고 봉투에 그 일을 위해 쓰라고 헌금을 하여 주셨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두세번의 준비 모임이 열렸고.......나는 준비위원회에서 연합회장으로 그리고 갈릴리 선교회 멤버들이 임원으로 그리고 그 모임을 통해서 알게된 다른 학교출신의 친구들이 준비임원으로 그렇게 조직이 되었다.

참 다들 맹랑한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참 감사한 것은 그 때 그렇게 무모하게 이 일을 동조하고 벌렸던 친구들이 지금의 나의 정말로 막역하고 유일한 신앙의 친구들이 될줄은 생각을 못했다.



우리는 대학생 선교회 고등부 대표간사님을 찾아가 뵙고 " 왜 성남에는 이 집회가 계획되지 않느냐...우리가 준비할테니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간사님도 우리를 격려하여 주셨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것은 우리가 준비해야만 했다. 다만 집회때의 강사님만 소개를 해주시고 그리고 강사님도 우리가 연락을 취하여 확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남교회를 빌려 대회를 열기로 하였다. 그때 우리 모임을 위해 이 영무 축구선수(목사) 그리고 요들송을 부르던 김홍철씨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주셨다.

대회는 정말 아름답게 치루어졌고..집회후에는 사랑의 헌혈운동 본부장이셨던 박진탁 목사님과 연결이 되어 많은 친구들이 헌현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장충 체육관에서 고등부 본 집회가 열렸다.

정말 많은 고등부 학생들이 그 체육관에서 모여서 찬양을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때 내 마음을 사로 잡았던 메세지는 김준곤 목사님의 꿈" 이야기 였다.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최초의 달 유영을 했던 우주인 이었던 암스트롱으 간증과 메세지는 나의 온 몸을 전율케 하였다.

아....하나님은 정말로 크고 광대한 분이시구나..........그때 그 분은 앞으로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드릴 사람들을 요청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것이 내가 목사로서, 아니 그 무엇인 된다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고 주님 앞에 드렸던 첫번째 헌신 이었다.

나는 그때 어려풋 하지만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강력한 힘이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비로서 주님의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 나는 내 인생의 항로를 결정하는 마음의 키를 그 분 앞에 드렸기 때문이다.

3) 신학교에서-

그리고 나는 신학대학을 들어갔다. 학교를 들어갈때 신학교를 가는 친구들과 그래도 우리가 이 다음에 크면 교단 일치 운동을 위해서 신학교를 나누어서 가면 어떨까 의논하였다. 그래서 나는 장로교를 다녔지만 서울신학대학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그리고 앞으로 제자훈련 사역을 하려면 교육적인 사역이 필요할 것 같아 기독교교육을 학부에서 전공해 보기로 하였다.



입학후 나는 많은 고민을 하였다. 신학대학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많은 실망이 몰려왔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 일단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기로 하였다.

일종의 도피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제대를 하고..일단은 진로를 결정하기전에 복학후에 하기로 하고 일년을 다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반대로 가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가운데 휴학을 하고....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다시 신학교로 부르셨다. 내가 공부를 하면서 유성전자고등학교의 숙직담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때 나는 저녁에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때 주님은 나를 신학교로 다시 가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방황없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시국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88년에는 학회장으로 일을 하면서 시국의 격랑속에서 흔들리는 경험을 하였다. 혼돈의 시절이었다. 좌와 우의 이념논쟁과 운동권이 대부분의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시절 - 내가 학생회를 이끌어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을 썼다. 다른 학생들은 나를 어용 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데모를 반대하니....의식이 없는 학생장이라는 것이었다. 눈물을 삼키면서 외로운 싸움을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도 하나님은 나에게 또 다른 계획하고 계셨다. 복학한 후에 나는 영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유학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나 보다. 가난한 내가 유학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할 수 없지만...하지만 어렴풋 하지만 막역한 계획이라고 할까...... 그때 그것이 나의 흔들리는 정체성, 그리고 일종의 가난한 나의 상황을 극복하는 일련의 탈출 행위가 아니었는가 싶다.

그때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은 OMS 선교사로 서울신대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Trude Higbee 선교사 였다.

나는 영어성경공부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리고 또 연세가 많으셨던 Fran Peterson 선교사과 교제하게 되었다.

프랜 선교사님은 초기 한국선교사의 딸로서 원산에서 유년기를 보낸 MK(Missionary Kid) 였다. 그 분의 한국말은 이북 사투리의 독특한 억양이었다.

특별히 프랜 할머니는 나의 발음을 얼마나 자상하게 고쳐 주려고 애를 쓰셨는지....

그러던 어느날 프랜 할머니가 나보고 오엠선교회에서 하는 " Love Europe"를 참석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어 보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언가 의아해 했는데 학교에 보니 러브유럽을 알리는 포스커가 붙어 있었다.



나는 프랜 할머니의 적극적인 권유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러브유럽을 참석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때 할머니는 나에게 $500 의 지원금을 주셨다. 이제는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러브 유럽 준비모임을 나가면서 필요한 선교비가 채워지도록 기도하였고 어머니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나는 러브유럽에 참석하게 되었다. 독일 오펜버흐에서 개최된 일주일간의 수련회는 그야말로 천국의 경험이었다. 커다란 공장건물을 대회장으로 개조하였는데 약 30명이 넘는 지원봉사자들이 수고를 하고...조지버워, 토니 캄펠로 같은 강사들이 뿜어내는 열정 어린 설교는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내 마음을 가장 감동 시킨 것은 예배 시간이었다.

약 5천명의 참석자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대회장은 마치 인종전시장 같았고 각 언어별로 통역되는 설교를 들으면서 그야말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그런 체험의 장이기도 하였다.

" We are marching in the light of God " 를 한 목소리로 부르면서 손에 손을 잡고 대회장을 행진하면서 찬양을 부르기도 하고.....마치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날 천국에서의 예배, 모든 족속과 방언이 호산나를 외치며 부르는 그 예배가 지금 이곳에서도 이루어 지기 때문 인 것이다.

성령의 강한 물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선택한 벨기에의 겐트(Gent)도시에서 모슬렘 사역을 시작하였다. 나는 그곳에 그렇게 많은 터키인과 북아프리카에서 온 모슬렘들이 살고 있는줄 몰랐었다.

우리 팀은 매일 골목에 나가 터키인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였다. 몇 마디의 터키어를 배워 전도지를 나누워 주고...또 돌아와서는 터키에서 사역하였던 미리암 이라는 네덜란드 출신의 싱글 선교사가 터키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여 주었다. 나는 미리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부그러웠는줄 모른다.

신학교에서 성서지리와 선교학을 배우며 바울의 전도여행도 배우고 소아시의 교회들은 알았지만 지금의 그 땅이 어떤 사람들이 어떻세 살고 있는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성서속의 그 땅이 지금은 인구 5천8백만의 인구 가운데 150명 정도의 기독교인 밖에 없는 복음의 황폐화된 땅으로 변화 하였다니.........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변화했던 그 땅, 그리고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서 오랜동안 기독교문화를 꽃 피웠던 그 땅이 이제는 복음의 불모지가 되고 모슬렘들의 유럽의 관문국가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앞에 얼마나 충격이 되었는지 모른다. 1989년 여름 그것은 나에게 실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또 나에게는 잊을수 없는 경험이 있다. 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을때 한 청년이 관심있게 다가와 이야기를 나누어 서로 소개를 하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다음날 주말에 자기집에 초대학고 싶다는 것이었다.

팀 리더에게 이야기를 하고 토요일 나는 터키인 형제와 함께 그의 집에 방문하였는데 그곳에 20여명 정도의 터키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소개를 받았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아버지는 나를 정말로 반갑게 맞으면서 터키식 인사로 내 뺨에 다섯번이나 키스를 하는 것이었다.

영어가 자유롭지 않은 아들의 통역으로 우리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었지만, 사연인즉 아버지가 한국전 터키 참전용사시고 한국전에서 왼쪽 팔을 잃어 버린 상의용사 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분은 오랜동안 한국을..그리고 한국 사람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 우리는 한국인을 형제처럼 생각한다" 는 그분의 말....다시한번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한번도 터키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또 한번의 부끄러운 경험이었다.



그해 여름 나는 무엇인가에 얻어 먹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수련회끝에서 오엠선교회의 선교사 입문을 하는 곳에서 수련회를 하는데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과 2주의 시간이 비워 있었다. 나는 선교에 대하여 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에 자원봉사자로 지원을 하였고 네덜란드 De Bron이라는 곳에서 진행되는 오엠 선교사 수련회에 참석을 하였다. 나는 Informationa Desk에서 일을 하면서 저녁에는 집회에 참석을 할수가 있었다.

300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오엠의 단기선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 2주간 동안 수련회를 갖는 것이었다.

뜨거운 찬양, 그리고 전시장 안에는 오엠의 필드들이 자기들의 사역을 소개하는 필드부스가 곳곳에 설치되어 호객(ㅎㅎ?) 행위를 하였다. 즉 자기 필드로 선교사들을 한명이라도 더 모집하기 위해서 상담을 하고 도전하는 일종의 선교전시장인 셈이었다.



때마침 그곳에는 한국외항선교회를 통해서 그해 오엠을 조인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있었다.

나는 아직 4학년 학생이었고 나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더 두든 거리기 시작하였다.

나의 모든 선입관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 나는 선교사를 연상할 때 마다 벽안의 푸른눈을 가진 서양 선교사를 생각했고,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한국 선교사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참 많이 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런 분들이라고 믿었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은 참 먼 이야기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만난 한국 선교사들, 또 많은 서양 선교사들은 참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목사 안수도 받지 않았고 심지어 신학교를 나온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요리사 출신도, 은행원도, 교사도, 의사도, 목회를 하던 목사도 그러나 그들에게 동일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아직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수많은 이방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슴으로 깨닫고 반응하였다는 것이 그들에게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일치점 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서 터키 필드 리더와 상담을 하였다.

그러자 그는 터키에 나와 같이 제자훈련 사역을 할 수 있는 기독교 교육가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는 영어를 잘 할 줄 모르고, 그리고 터키어는 알파벳도 모른다고 그러자 그는 자기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의 내 영어정도면 팀 생활하는데에는 어려움이 없고 그리고 터키어는 와서 배워도 늦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나는 내가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하자....그는 말하기를 주님이 마28:18 절에서 말씀 하신 것은 명령이지 내가 선교사의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주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을 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하였다.

실로 난감한 노릇이었다. 다른 어떤 이유로 변명할 거리가 별로 없었다.

그러자 나는 " 아직 한 학기가 남아 있습니다. " 그러자 당연히 학교를 마치고 바로 터키로 오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 돌아가서 기도하고 준비하겠다고 말을 하고 상담을 마쳤다.

그리고 나는 가을 학기 나의 마지막 졸업 학기로 돌아왔다.

변한 것이 있다면, 나에게는 다른 어느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 고민 하나를 안고 돌아 왔다는 사실 이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다짐을 하였다. 하나님 내가 지금 당장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지만 내가 열방을 향한 기도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교에 헌신한 친구들과 특별히 이슬람권 사역에 관심이 있었던 최, 진, 강 (모두 다 지금은 선교사가 되어 있지만) 친구들과 같이 이슬람중보 기도 모임 활동을 시작하였다.

화요일 금요일 채플 시간에 모슬렘 인구가 90%가 넘는 나라들을 선정해서 세계기도정보" 책자를 통해서 그 국가에 대한 기도정보를 번역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나누며 친구들과 함께 기도 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기도를 하면 할수록 내 마음은 더 크게 이슬람권 나라들 사람들 특별히 터키를 향한 마음의 부담이 커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민이 되었다.

첫번째는 나는 언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는 두려움....

그리고 두번째 내가 더 준비되어여져야 하고 공부를 더해야 할것 같은 두려움이 내게 있었다.

세번째 홀로 남으실 엄마에 대한 걱정과 후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난 단 한번도 집을 떠나 본 적이 없었는데 과연 내가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Q.T를 하는데 그날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을 묵상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장이고 특별히 전도와 선교에 대한 메세지를 할때 마다 사용하던 본문이었기에 의례적으로 읽고 묵상하고 있을때 였다. 그런데 그날 아침 성령님은 새로운 시각으로 한 말씀을 발견하게 하였다. 즉 17절 말씀에 "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자들도 있더라......"

어 ? 이상하다 내가 그토록 자주 읽고 심지어는 인용하며 설교하던 본문인데....그런데 그 날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17절 말씀에 " 아직도 의심하는 자들도 있더라.." 하는 것이었다. '

그 그날따라 그 말씀이 마치 현미경으로 확대하듯 아주 큰 글자로 내 눈앞에 보여지는 것이었다.



바로 그날 나는 주님앞에 그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나는 어떻게 선교사가 되는줄 알지 못합니다.

저를 도와 주십시오 !!!!!!!!!!!!!!!!!!



그리고 마치 이미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함께 했었던 제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의심하고 있는데 저도 주님 저에게는 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저는 영어도 할줄 모르고 더더욱 저는 아직도 해야할 공부도 다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이 원하신다면 주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학교 도서관 뒤의 성주산 조그만 바위위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내 씨름을 멈추었다.

주님은 내게 그런 깨달음을 주신 것이다. 즉 주님의 지상 대 위임명령을 받는 제자들이 어떠한 사람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그 명령을 하고 있는 이가 누구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령하기 이전에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진 이 " 가 누구인가를 제자들에게 확인하셨다.

그 동일한 주님이 내게 말씀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명령은 심지어는 의심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도 말씀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20 절 말씀을 통하여서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선교사님은 선교사의 Calling을 어떻게 받으셨습니까? "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 나는 저는 마태복음 28잘 17절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 아직도, 다른 성경에는 더러는 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의심하는 자들도 있더라...."

그런데 주님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진 분이신데 그 분이 모든 족속으로....저에게는 터키의 모슬렘들을 위하여 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아직도 선교에 헌신한 많은 젊은 이들이 분명한 선교 부르심에 대한 확증과 확인을 기다리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환상이나 비전이나 예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늘도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그 분의 음성을 듣는 일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니 가장 중요한 질문이 우리에게 있다.

나는 주님의 제자인가? 그렇다면 주님이 주님의 제자들에게 어떤 명령을 주셨는가를 계산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심지어는 의심하며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조차 주셔야만 한 가장 위급한 명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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