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4일 일요일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

"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 ?" 요즘 우리 시대에 나타나는 일반적 사회현상 가운데 하나는 교회나 종교그룹에 속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일반의 그룹들 가운데서 더 강한 "영성계발" 또는 "영성추구"의 현상이 나타 난다는 점이다. 전통적 기독교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던 유럽에서는 탈 기독교화된 서구인들의 " 진리를 향한 아니 더 정확히 표현 한다면 진리를 경험" 하기를 원하는 간절한 추구들이 " 비서구적, 비헬레니즘적인 동양철학과 신비주의"에서 찾으려는 진기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티벳의 종교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설법을 듣기 위해 서구문명의 상징적인 보루인 미국과 유럽에서 수 만명의 사람들이 운집하는 기이한 현상도 오늘날의 시대가 물질문명이 아닌 "영성의 시대"에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단편적 실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영성의 세계, 아니 기독교가 성서의 본질을 잃어 버리고 교의적인 기독교로 머무르며 생명의 본질이 없는 문화와 교회의 전통으로 변질해 가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생명의 본질이 빠진 하나의 도그마틱한 때로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이기도 해 보이는 전통화된 메세지에서가 아니라, 말씀의 현존이 있는 진정한 영성의 경험을 그토록 목말라 하고 추구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진리와 오늘날 교회가 외치는 진리가 동일한 것이라면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안에서 경험하는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잃어 버린채 살아 있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자" 라고 진단한 성령의 음성을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라고 바라 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바울은 살전1:5 절에서 "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라고 말한다. " 능력과 성령" 그것은 오순절 사건이후 사도들, 주의 제자들이 증거하는 말씀 가운데 나타난 진리의 체험,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생명력 있는 신앙의 고백 안에 있었던 교회의 상징이자 표지 였었던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는 영성에도 그들이 갖는 궁극적인 질문과 더불어 시작되어 진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가? 두가지 존재론적인 질문이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존재론적인 질문에 대한 응답을 찾을 때 비로서 우리는 영적인 세계에 맞닺게 되어지고 살아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현존과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29:13)모세가 하나님을 만날때 당신을 누구라고 말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 앞에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라고 말씀 하신다. 모세는 자신을 부르는 하나님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3:4) 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안 응답은 " 내가 나의 현존 가운데서 내가 누구인가?" 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될때 출발하게 되어진다. 하나님의 동산에서 스스로 지혜를 구하였던 인간이 오히려 잃어 버렸던 "나의 진정한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자신의 어두운 구석을 바라보게 될 때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되어지고 그 은총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고 말씀 하셨다. 인간이 추구하는 진정한 영성의 추구는 본질적인 진리안에 감추어져 있고 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에 인간은 비로서 우리가 잃어 버리고 그럼으로 우리가 갖혀 있던 우리를 가리우는(Blind to the truth) 어움으로 부터 자유케 되어 지는 것이다. 수많은 현인들이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간절한 구도와 그들의 영성의 세계를 구축하여 왔다. 우리는 이제 " 오직 예수로만" 이라는 도그마틱한 진리가 아니라 오히려 궁극적으로 예수를 통하여 만" 이라는 새로은 길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 진리를 알지니.......라고 말씀 하시던 그 하나님이 하나님의 현존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온전한 현존 안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생명이니 ....(요14:6)" 라고 말씀 하시며 가장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진리의 기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이다. 빛이 비추이기 전에는 우리는 내가 어둠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어린시절 찢어진 문틈 사이로 빛이 비추어 들어올 때 얼마나 많은 먼지들이 내가 호흡하던 그 방안에 있었는지를 비로서 보게 되는 것처럼......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지각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빛이 우리에게 비추이게 될때 비로서는 우리는 나의 추하고 어두운 모습들과 그리고 나에게 그 분의 은총이 없이는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지는 것이다. 우리가 나의 절망의 끝 가운데 서 있을 때 비로서 그 끝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보게 되고 그 은총을 통하여 주시는 나로부터의 구원(죄로 부터의 구원)을 경험하게 되고 비로서 우리는 나의 현존가운데서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그것을 가장 황홀한 영적경험의 순간 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것을 "참된 예배" 라고 부르는 것이다. 구약의 성서인 이사야 6장을 읽노라면 우리는 이사야의 현존적 경험을 읽는다. " 화로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주 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정직한 나의 현존을 만나는 경험이 없는 모든 영적인 체험과 " 나에 대한 앎" 은 기만이요 나를 더욱더 나로부터 분리시키는 혼돈스러움이요 결국은 인간은 그 지식과 앎을 인하여 파멸하게 되고 멸망하게 되어 지는 것이다. " 나는 누구인가" 정직하게 질문하고 반복하여 질문하라..........그 질문의 끝에서 당신은 비로서 영광스런 현존으로 항상 살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어 질 것이다. " 그 깨달음의 순간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고 그 분이주시는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차를 길가에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땀을 흘리며 고치고 있었다. 그 때 고급 리무진을 탄 80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 운전자에게 묻는다. " 무슨 일인가 젊은이 혹 도움이 필요한가?" 그러자 운전자는 노인을 보고 갖잫다는 듯이 아닙니다. 잠시 자동차를 손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해결 하지요?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서 3시간이 넘도록 이 운전자는 여전히 문제를 찾지 못하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후 노인이 일을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이 운전자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운전자에게 젊은이 도움이 필요함애기 하게나....무엇인 문제인가? 라고 친절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운전자는 여전히 빈정거리는 말투로 할아버지가 어떻게 도와 주실수 있는데요? 라고 말을 하였다. 그러자 이 노인은 차문을 열고 내리며 이 운전자에게 친절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젊은이 나는 헨리 포드라고 하네....사실은 내가 이 차를 내가 만들었거든 그러니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걸세 그리고 노인은 얼마 안되어 자동차를 고쳤고 다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게나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오늘 내가 나를 찾는 진정한 영적 순례를 하고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나를 그 분의 형상으로 만드신 그 분앞에 돌아올 때 인 것이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그 분께 나를 보여줄 때 그 분은 나의 거울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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