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a blog of Johnny Song who has been working with Operation Mobilization more than 20 years since 1989. Currently, he is located in the beautiful rural town of Cambridge and is running missionary training courses for their cross cultural ministry and Global leadership. He is also involved in missionary care ministry, and counseling ministry. He's got a MA in Christian Education, and is a Doctor of Christian Counselling.
2013년 2월 25일 월요일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
(출34:29-35)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께서 주신 두 돌판에 새겨진 언약판을 들고 내려오던 모세는 산 아래서 벌어지는 우상숭배의 광란하는 소리를 듣고 그 노를 참지 못하여 산 아래로 돌판을 던지어 그 돌판은 깨어져 버린다. 하나님이 친히 만드시고 친히 쓰신 돌판 ! 하나님이 언약을 주시는 순간에 이스라엘은 언약을 깨는 행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면처럼 오버랩 되어 나타난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 당하는그 순간에 예수를 배반하고 도망하는 제자들의 모습처럼…………
그러한 모세에게 하나님은 다시금 부르시고 그들을 위해 새로운 언약판을 주시기로 작정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는 그 돌판을 모세가 깍아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성전의 모퉁이돌 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에서 그 몸이 깨어지셨던것처럼,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은 우리의 죄로 인해서 깨어진 그리스도몸, 모통이돌 되신 그 돌판위에 언약을 새기셨던 것처럼 말이다.
모세는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서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 하였던 것이다. 그 때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였다고 말씀 하신다. (출34:28)
모세의 이 장면은 예수님이 산에 오르시어 사십일 동안 금식을 하시며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교제 하시는 장면과 흡사한 모습을 지닌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모세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모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 일 것이다.
40일간의 차단된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모세는 과연 하나님을 어떻게 뵈었을 까?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만 그런 특별한 시간과 경험을 허락하신 것일까?
아마도 모세의 당돌한 기도를 주의해 볼 필요가 있는 듯 하다.
모세는 출33:18에 “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 라고 기도한다. 모세의 간절한 열망은 더 큰 능력이나 권세, 지혜도 아니었고 그의 간절한 열망한 여호와의 영광을 보는 것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예배자의 기도가 아닌가?
모세는 자신의 위치와 신분을 깨달았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놓치어 버린 인간의 참 된 위치와 신분이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잘 간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광을 구함으로서 그는 인간은 예배자로서 그 분 앞에 서 있을 때 비로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는 비밀을 깨달은 듯 하다.
모세가 돌판을 받아 들고 산에서 내려올 때 사람들은 모세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놀라기 시작한다.
29절에 보니 “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으므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의 빛은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투영 되어지는 영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얼굴에 나는 광채를 알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 그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이것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최초의 속이는자 사단이 끊임없이 구하였던 원초적인 죄가 아니었던가?
사역자에게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요 만일 우리가 영적인 지도자이면 일수록 더 깊은 유혹가운데 우리가 빠질 수 있음을 우리는 모세를 통해서 발견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 때문에 자신을 두려워하고 신비하게 여기는 것을 눈치챈 모세는 사람들을 만날 때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웁니다.
막9:1-8 십자가로 가시기전 예수님은 엘리야와 모세를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르로가 보니 예수님의 광채가 너무나 빛이 나서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영광이 예수님에게 드리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영광 자체이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 하였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모세에게는 그 말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영광 그 자체셨던 것입니다. 요1:14 “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 이셨던 것입니다.
모세가 얼굴을 가리운 것은 그것은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의 역할,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Reflection) 광채라는 사실을 모세는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모세의 이 영광은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고 나타날 모습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롬8:18 바울은 “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후4: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함이니…”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는 장차 성도들이 주님의 나라에 임할 때 진리되신 하나님을 뵙게 될 때 나타날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 자기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여화와와 말한 것으로 인해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땅의 성도들에게 진정한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모노로그가 아니라 다이로그적인 예배 인 것입니다. 행13장에 보면 안디옥 교회는 예배 할 때에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사야가 예배 할때에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 여호와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내게 보여 주소서” 모세의 기도가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우리가 마음으로 주님 앞에 부르짖을 때에 우리에게 임하시는 여호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얼굴에 광채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예배자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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