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 창 12:1
우리는 인생의 많은 것을 아르라함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든지 부르실 수 있다는 점이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거부했다거나 아니면 양해를 구하며 연기를 했다거나, 아니면 부르심을 피하여 요나처럼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를 찾아 볼 수 없다.
아마도 그의 대답은 " 예 하나님, Yes, Lord, I will go ! 제가 가겠습니다" 라고 했을 것이다.
창12장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는 장면을 서술 했을 때,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렀다" 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성경이 아브라함의 그 이전의 삶을 상세히 서울하지는 않아도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는 분명히 그를 부르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미 창 11장을 통해서 우리는 바벨탑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의 말씀을 보면, 어쩌면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그 시대, 또는 그가 살던 그곳은 수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던 다신주의가 창궐하던 그러한 때 였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알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 이유를 알길이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상숭배와 다신주의가 창궐한 그 때에도 아브람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참된 주인되신 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며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분명한 사람이었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전혀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하던 방법으로 못하던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전환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늘 상 신기롭고 경이로운 것은, 내가 하나님을 찾았던 시간보다,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운명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친히 그가 우리를 찾아 오신다는 사실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묻지 않고 순종한 절대적 순종의 태도가 우리를 책망한다.
그는 자기가 너무 늙었다고 젊은 사람을 가리키며 자신이 적당한 사람이 아니라고도 변명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미 충분히 늙었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너무나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제는 정착하고 노후를 안정되게 누려야 한다고도 항변하지 않는다.
창 12:4 절에 보니,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다" 고 말한다.
하나님의 왕국에는 " 은퇴" 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요즘처럼 조기 은퇴를 강조하고 사실은 수 많은 사람들이 옛날이면 한참 일할 나이의 때 은퇴를 해야 하는 요즘의 시대적 상황에서 보면, 아브람의 삶은 그야 말로 역발상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한가지 아브람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때는 항상 그 분은 자신의 목적을 갖고 우리를 부르신다는 사실이다.
그 분의 부르심의 목적은 항상 우리가 갖고 있었던 우리 인생의 성취 목표보다 항상 더 크고, 그리고 더 절대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순종의 댓가는 항상 " Good Surprise " 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더 크고 기이한 계획을 청사진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하고 항상 크시다.
창 11장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창대케 하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마음의 숨은 뜻을 보시고 언어를 혼잡케 함으로 그들의 이름은 어느 누구도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아브람은 하나님의 계획처럼 "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v2..
그의 이름은 중동근바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 되었다.
아니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이름은 너무나 유명한 이름이니 말이다.
참으로 아니러니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천국은 " 높아지고자 하는 자를 낮추시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를 높이시는 " 역발상을 갖고 계신것 같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리를 강망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를 갈망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아브람의 삶의 본은 우리를 책망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하시는 역발상적 일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우리는 또 한가지 아브람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보호하거나 지키려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그 분이 친히 그를 지키신다는 점이다. (..창 12:3)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높이거나 또 우리를 보호할 아무런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깃발이 되시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10월부터 진행되는 Silver missionary Training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아브람을 묵상해 본다.
70이 가까운 나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선교의 한 현장에서 그 분을 섬기겠다고 고국을 떠나는 이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아브람을 통해서 목소리를 듣는다.
아 ! 우리의 인생에는 너무 늦은 때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거나 삶의 목표가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이야 말로 그 일을 위해 시작할 가장 좋은 때 일 것이다.
아브람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늦은 때는 없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가 ?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새로운 생의 비전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비전을 가슴에 품게 될 때 사람들은 변화를 시도하게 하고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곳을 향한 미래를 향한 강한 열망이 현재에서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한 강한 열망을 불태우게 하기 때문이다.
몇년전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가 지은 핑" 이라는 책을 기억한다.
책의 주인공 개구리 핑은 험한 철썩강을 건너 그토록 갈망했던 황제의 연못에 도달한다. 그러나 그곳의 통치자 두꺼비와 연못 주민들은 자신들의 작은 연못이 세상에서 가장 넓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핑은 연못 주민들에게 더 큰 세상이 있다고, 함께 위대한 바다를 만나러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핑의 제안에 오직 젊은 개구리 두 마리, 다이콘과 호도만이 따라나서고 핑은 부엉이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멘토가 되어 광대한 바다로의 모험을 다시 시작한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만 단념할 줄도 아는 것이 성숙하며 어른스러운 것이며 그것이 현실적인 것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 이들에게 핑은 이야기한다. "가능성으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 유일한 진짜 장애물은 항상 자기 자신입니다. " "인생에 있어 무언가 되기 위해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우리 삶의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노년의 나이에 불쑥 찾아온 하나님의 방문을 아브람은 아무 두려움 없이 받아 들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당신 가슴안에 무엇인가 되기를 갈망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는가? 부지중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방문을, 그 분의 음성을 듣기를 갈말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너누나 늦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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