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 가운데 신뢰를 찾아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고 한탄을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도 사랑과 존경이라는 신뢰가 있을 때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가 있는 것입니다.
부부간의 관계에서는 정조를 지키는 것으로서 표현되어 질 수 있는 신뢰가 있습니다.
친구 사이에서도 서로의 신의를 지키는 흔히들 " 의리" 라고 불리우는 신뢰를 표혀해 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같이 신뢰를 찾아 보기 힘든 시류 속에서 목숨을 걸고 서로의 신의를 지키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우리를 감동 시키게 되어지고 그 감동의 이야기가 살아 있을때 우리의 인생은 여전히 소망이 있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나타나는 많은 이야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을 말하여 주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그 장면들 가운데 늘 저의 마음 가운데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약관의 소년들이었던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 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한 사랑의 이야기 이고 그리고 우정의 이야기 입니다.
첫번째로,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는 흔히 말하는 신분을 초월한 우정의 이야기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천한 목동이었습니다. 다윗의 가족은 양을 치면서 사는 평범한 목자의 집안 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중에서도 가장 어린 막내였고 아버지도 그에게 주목하지 않을 만큼 그는 아주 평범한 소년 이었습니다.
반면에 요나단은 왕자의 신분 이었습니다. 그것도 살아 있는 권력을 가진 사울왕의 왕권을 이어 받을 적통 왕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이스라엘의 왕위를 물려 받을 약속되어진 미래의 권력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소년의 사랑과 우정은 여인의 사랑보다 승한 깨어지지 않는 우정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두번째로,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는 시간을 초월하여 지속되는 영속적인 우정이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사울왕이 죽고, 요나단도 죽음을 맞이 합니다. 고대 근동의 풍속 대로 라면 언약은 언약을 맺은 상대편의 한 사람이 죽을때까지 존 속 됩니다. 언약의 대상의 어느 한 쪽이 죽게 되어 질때, 그 언약으로부터의 의무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그를 보호하고 그글 자신의 왕자의 하나처럼 대하며 자신이 요나단에게 맺은 그 언약을 지켜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우정의 사랑은 시공을 초월한 영속적인 사랑이고 우정임을 보여 줍니다.
세번째로,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언약을 구속적인 관점에서 보여주는 아주 생생한 예표로서의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 해 줍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를 통해서 성도들과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언약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사랑과 우정의 관계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승화시키고 영화롭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하기는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를 들을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 하고 축복합니다.
본문은 사무엘상 18:1-5 로 돌아 갑니다.
"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 하였고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읏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 하였더라,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우리는 왜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저는 요나단이 단순히 어린 다윗이 블레셋의 군대장이었던 골리앗을 죽였던 영웅적인 전투의 소식을 듣고 그의 탁월한 능력때문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다윗 못지 않은 놀라운 전투의 승리를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요나단과 병기든 두 소년이 불레셋 군대를 물리치는 사건을 통해서 이미 요나단은 다윗 못지 않은 용기와 담력과 그리고 리더십을 지니고 있었던 탁월한 사람이었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골리앗과의 싸움은 많이 이야기 하지만 요나단과 병기든 소년이 어떻게 블레셋 군대를 물리쳤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의아할 정도입니다.
사실 요나단의 불세출의 영웅적인 승리의 사건은 다윗의 등장 이전에 이루어졌던 것을 통해서 요나단은 다윗처럼 출중한 영웅이었음을 충분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4: 1-23).
아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 입니까? 하나님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소년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것을 봅니다.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루어야 하는 고대 전쟁사에서 요나단과 다윗이라는 소년을 등극 시키시는 것입니다.
1. 요나단과 다윗은 한 마음으로 연합합니다.
저의 추측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18장 1절에 있는 한 단어를 통해서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의 단서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1절에 보니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Jonathan became one in Spirit with David ..."
이 두 소년이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그 마음은 무엇일까요?
저는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히 여기는 마음 이었던 것이라고 믿습니다.
14장으로 돌아가십시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군대가 불레셋 사람과의 전투에서 불리한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요나단의 마음을 불붙게 하는 동일한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이 6절을 통해서 나타 납니다.
" 6,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를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노라..."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제 눈에서 흐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수많은 성인들이 죽음의 공포앞에 떨며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고 있을 때, 어린 소년이었던 그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요나단의 병기든자 두 소년의 마음이 의기 투합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리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위대한 믿음의 결단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전능한 하나님 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요나단의 고백은 무엇인가 닮은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요나단의 고백은 마치 쌍둥이가 같은 고백을 하는 것처럼 다윗이 골리앗을 싸울때의 다윗의 고백과 동일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었을뿐만 아니라 어쩌면 어린 요나단이 어떻게 병기든 소년과 함께 블레셋 군대를 쳐서 승리하였는지를 들었을 것이고 요나단의 무용담은 아마도 어린 다윗에게 믿음의 상승 작용을 하였으리라 저는 믿어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45-47절의 고백은 어쩌면 요나단이 불레셋 군대와 싸울때 고백하였던 요나단 고백의 다윗버전(David's Version)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절에서 그들이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그 근거는 그 소년들이 유일한 마음의 고민과 관심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일일까요?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 그 마음이 하나가 되어 여호와 앞에 한 마음으로 나아올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 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하리라 저는 믿습니다.
2. 요나단은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맺습니다.
3.절에 그들은 한 마음으로 연합하였을 뿐 아니라 마치 여인이 사랑에 빠진것처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말은 마치 남자가 여인을 사랑하는 그 동일한 단어, 헤세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신약적 의미로는 그리스도가 그의 제자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 사용하신 아가파오" 즉 아가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둘은 언약을 맺는다고 말 합니다.
여기에서 언약이라는 단어는 "베리트" 라는 단어 입니다. 그 때 당시 고대 근동의 언약의식은 짐승을 잡아 그 짐승을 칼로 반으로 가릅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는두 당사자가 갈라진 짐승 사이로 걷습니다.
그 이야기는 만약에 언약을 어길시는 그 짐승과 같이 하나님께서 저주를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된다라는 것을 동의 하는 것입니다.
베리트" 라는 단어 자체가 Cut it off" 가르다 잘라내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을 보면 다윗과 요나단은 이러한 언약의식을 거행 했으리라 믿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은 18장 뿐만 아니라 20장에 다시 한번 등장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무엘상 20:16-17 절에 그 소년은 다시 들판으로 나아가 두 사람 사이에 서로를 향한 사랑의 언약을 맺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워 이들은 생명을 걸고 서로를 지키고 축복하는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살아 있는 동안 다뒷을 생명을 위협하는 어떤 이들도 요나단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살아 있는 동안 요나단을 위협하는 어떤 이들도 이제 부터는 다윗의 원수가 되는 것 입니다.
더 나아가 다윗과 요나단의 가문 사이에 이들은 서로를 보호하고 축복하는 관계가 가문에 까지 이어지는 언약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 때 맺는 언약이 두 가문 가운데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역사를 통해서 바라보게 될 때 전율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무엘하 9장에서 다윗이 요나단 사후 본인이 왕이 되었을 때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며 요나단 가문 가운데 남은 자를 찾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삼하 9:1 절에 보니 "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이었던 므비보셋을 찾아 그를 예루살렘 다윗의 왕궁에 머물게 하고 그를 왕자의 하나처럼 다윗의 식탁에 함께 하게 하는 놀라운 이야기는 다윗이 어떻게 요나단과의 맺은 언약을 지키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실 요나단이 다윗과 언약을 맺을때는 다윗이 요나단을 위하야 해 줄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요나단은 이 언약을 지키려 할때 그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했습니다.
첫번째로 그는 자신의 왕위를 포기하는 위험을 감수 합니다. 아버지 사울이 아들 요나단을 " 천한 계집의 아들" 이라고 비하하면서까지 다윗을 보호하는 아들 요나단의 행위를 비하하는 모습은 다윗의 존재가 얼마나 사울에게, 그리고 그 아들 요나단에게 위협적인 존재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윗을 아버지에게로 부터 보호합니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창을 던져 죽일려고 했을 정도로 다윗은 사울의 가문에 위협적인 존재였기에 아들을 죽이려 까지 하면서 자신의 가문을 지키려 했던 사울에게는 아들 요나단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인자하심 때문 이었습니다.
긍휼, 여호와의 사랑, 희생의 사랑, 이것은 아가페의 사랑, 즉 구약의 헤세드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삼하 9:1 절에서도 다윗은 여호와의 인자를 이야기 합니다. "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에게 여호와의 은총을 베풀리라 " 여기서 은총도 동일한 여호와의 인자, 헤세드의 사랑인 것입니다.
아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입니까?
하나님이 죄인을 부르실때 하나님은 여호와의 인자 헤세드의 사랑때문에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놀라운 비밀을 정확히 바라 보았습니다. " 에베소서 2:8 절에서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여기서 은혜는 여호와의 인자를 말씀 하십니다.
다위과 요나단이 서로를 향하여 가졌던 헤세드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다윗의 사후 솔로몬 시대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던 초기에는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으로 통치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은총을 베풀어 지혜와 명예와 부귀를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후에 그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이방여인들과의 통혼에 대한 규례를 어기고 수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후궁으로 그리고 첩으로 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둘로 나누십니다.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으십시다.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오직 유다 지파와 그리고 그를 배반하지 않고 남은 베냐민 지파만이 유다에 속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로보암은 오히려 이스라엘의 10지파가 함께 한 이스라엘 왕국을 건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르호보암은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이 남아 유다 왕국을 지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왕상 12:21-23).
참으로 놀라운 것은 사울, 즉 요나단이 속하였던 베냐민 지파는 다윗의 왕국인 유다 왕국에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나단과 다윗이 맺은 언약이 다음 세대를 통해서 이어지는 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보면서 얼마나 전율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아 ! 다윗과 요나단이 함께 맺은 언약이 세대를 지나면서까지 여전히 하나님의 헤세드 안에서 굳게 맺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신약의 말씀을 읽으면서 다윗과 요나단이 맺은 언약이 여전히 유효 하게 성취되었는지를 발견한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그리스도의 족보를 소개할 때 그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씀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교회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탄생되었을 때 수많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예수님의 도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 들중에는 초기에 교회를 열렬히 핍박하던 한 청년이 있었던 것을 발견합니다.
그가 얼마나 교회에 위협적인 존재였는지는 이 청년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한 뒤에도 아무도 그를 교회 가운데로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굳이 이 청년 사울을 택하시고 그를 부르셨을 까요.....?
저는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빌립보서 3:5 절에서 자신의 가문을 소개하고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전율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울,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어지기까지 하며 수많은 고난과 박해와 죽음의 위협을 무릎쓰고 예수그리스도의 강력한 변증자가 된 사도 바울이 바로 요나단의 후손인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아 ! 이것이 헤세드의 사랑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요나단이 다윗에게 여호와의 헤세드를 통하여 사랑을 베풀고, 다윗이 헤세드의 사랑으로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고, 모든 이스라엘의 10지파가 다윗의 왕국을 배반하였을때 베냐민 지파만이 남아 다윗의 왕국을 지키었던 것처럼,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헤세드의 사랑으로 베냐민지파, 즉 요나단의 후손인 사울을 전적으로 환상 가운데 불러서 그를 자신을 이방의 왕들과 권세자들에게 선포하고 변호하는 자로 삼으시고 요나단의 후손인 바울은 죽음같은 사랑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추종자,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로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은총의 역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요나단이 언약을 맺을 때 본인에게는 한없는 희생을 요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인자를 베풀어 언약을 맺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다윗과 요나단과 맺었던 이 언약을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백성인 우리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언약의 완성을 이루는지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3,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은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언약을 보여 주는 놀라운 상징입니다.
성경에 언약(베리트, Covenant)이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맺은 장면입니다.
창 15:1-21 특별히 18 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맺을 때의 의식을 통하여 우리는 언약의 원형을 보게 됩니다.
즉 짐승을 쪼개어 놓을 때 하나님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불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갑니다.(17절)
여기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그 쪼갠 사이를 지나갔지, 아브람은 지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브람의 생애,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아들 ,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에 이르기까지 언약을 어기는 것은 늘 아브람의 후손들 우리들 쪽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언약의 모양을 바꾸시면서 까지 끝까지 자신이 세운 그 언약을 지키시는 인내의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멸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구원 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헤세드, 하나님의 인자 때문 인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과 영원한 언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이 언약을 깨어지지 않는 영원한 언약 입니다.
히브시 기자는 히브리서 8장을 통하여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끊임없이 보여 주셨던 옛 언약은 장차 올 즉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영원한 언약을 예표하는 그림자였다고 말합니다.
히 9:12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없어질 언약이 아니라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히8:13)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이 유월절 예식을 지키시며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나누시면서 이 언약식을 맺으십니다. (막 14:22-26)
" 떡을 떼며 축하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는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4)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 언약은 장차 다시 변형되어질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친히 그 언약을 보증할 쪼개진 짐슴의 몸으로, 또 피가 되신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 얼마나 놀라운 언약 입니까?
이것은 마치 요나단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다윗이 아무것도 요나단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헤세드, 즉 여호와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언약을 맺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의 인자, 헤세드의 사랑으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아 ! 놀라운 그림입니다. 요나단이 자신의 왕자의 자리, 그리고 더 나아가 왕의 보좌를 다윗을 위하여 버렸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모든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요한복음 1:14, 빌립보서 2:5-12)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언약을 맺으실때, 여러분이 그 분을 위하여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시고 그 분 자신이 친히 쪼개신 짐슴사이로 지나가셨던 하나님처럼, 그분이 친히 영문밖으로 나아가서 그 분의 언약을 성취 하셨던 것입니다.
4. 다윗은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요나단의 모든 것을 받습니다.
다시 사무엘상으로 돌아가 보십시다.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맺을때에 그가 갖고 있었던 모든것을 다윗에게 줍니다.
4절에 보니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라고 말합니다.
구약시대에 겉옷은 신분을 상징합니다.
왕자의 신분은 그의 겉옷을 통하여 나타내어 집니다. 겉옷은 신분인 동시에 그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던진 것은 자신의 신분을 내어 던지는 것과 같은 심각한 행동이고 의식 인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의 보좌를 버리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실때 그 분의 겉옷은 벗겨졌고 찟져졌던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이를때에 의의 세마포를 입게 하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다윗은 목동에서 왕자와 같은 신분으로 사람들의 존귀를 얻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요나단의 옷을 입고 다닐때 사람들은 다윗이 요나단에게 중요한 사람, 즉 그와 같은 동일한 존귀함을 사람들에게서 얻게 될 것입니다.
4절에 성경은 또 요나단이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 띠도 그리하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띠는 매우 중요한 상징입니다. 남자가 띠(벨트, belt)를 찬다는 것은 그가 사용하는 모든 군장들을 달고 거닐게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물품입니다. 띠에 그는 칼을 차게 됩니다. 띠에 활을 매답니다.
즉 그것은 그사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 권능을 상징하는 표지 인 것입니다.
즉 요나단의 모든 권한을 다윗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보니 사람들이 다윗을 다른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존귀한 자로 인정하기 시작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의 비밀을 우리가 알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자 인가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다른 눈으로 우리를 인정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윗이 요나단의 띠를 우리의 허리에 두르고 걷기 시작할때 다윗의 삶은 놀라운 변화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에베소서 6장 14절에서 진리의 띠라고 말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 하나님의 권세는 어디에서 나옵니까?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주님의 권세는 어디에서 나옵니까?
네 그분의 말씀에서 입니다. 우리가 요나단의 띠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수 있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음을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검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은 권세 입니다. 말씀은 권능입니다.
이것이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속에 감춰진 비밀 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와 언약을 맺는 자들에게 감춰진 언약의 비밀인 것입니다.
사도행정 1:8절 주님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이 띠로 무장할때까지 나가지 말것을 말씀 하십니다.
언약의 비밀을 이해할때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 위로부터 오는 권능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동행전은 우리에게 놀라운 비밀을 보여 줍니다.
즉 언약의 성취가 어떻게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에 권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처럼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할때 귀신이 굴복하고 병든자가 고침을 받고 앉은 뱅이가 일어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 !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언약을 맺었다면 우리는 그분의 전적인 보호하심, 그리고 권능 그 모든것을 우리가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당신은 주님과 함께 이 거룩한 언약에 참여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의 헤세드의 사랑을 인하여 당신에게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언약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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