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교사들이 열정을 갖고 사역지로 나아 간다. 때로는 사역지에서 겪을 충격과 그리고 자신이 지불해야 하는 배움의 값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도 가늠하지도 못한체 처음 선교지로 나아가는 선교사에게는 그 가슴속에 부푼 꿈과 이상 그리고 당찬 야망(비록 선한 야망이라 해도 나중에 그것은 정말 허황되고 당차다 하겠다.)을 안고 선교지로 나아간다.
나도 예의는 아니었다. 국제선교단체에서 그 전년 까지만 해도 다른 사역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받지도 않았고 사무실에서 조차도 바로 첫해에는 바로 터키로 들어갈 수 없다는 협박(?)을 들으면서 나는 내심으로는 그렇지만 하는 당찬 용기를 갖고 다른 필드를 거치지 않은 첫 케이스로 들어간다는 자부심마저 가진체 터키로 들어갔다.
국제팀이니 당연히 영어로 생활해야 하는 어려움 그래도 조인할때는 통역을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얄팍한 실력을 믿고 나는 잘 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었다.
언어학교에 등록을 하고 마치 입학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언어학교로 가는 날을 기다리며 부뿐 기대감으로 조바심을 내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너무나 쉽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바로 내가 사는 싱글 숙소, 즉 우리가 세들어 사는 아파트 앞동에 대학을 다니는 청년이 있었고 얼마나 친근한지 그리고 조금 영어로도 소통이 되니 금상첨화였다.
그래서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되기를 다짐하고 터키어를 배우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였는데 순수히 오케이 였다.
그래서 생존을 위한 터키어 예습을 진행하였다. 언어학교에 가는 법, 버스 노선과 버스를 타고 내릴때 요령....
옛날 어린시절 승합차로 불렸던 조그만 미니버스가 마치 택시처럼 다니는 노선 어느 곳이든 손님이 내리고 싶은곳에 승하차를 할 수 있는 정말 자유 백배의 재미난 교통수단이었는데 터키어로 "돌무쉬" 라 불렀다.
앞집 청년은 친절하게도 종이에 써 주어가며 내가 내릴 곳 앞에서 운전 기사 아저씨에게 이렇게 외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 브라다 이넥바~르 " 몇번을 연습을 하였으니 발음에도 자신감이 붙고 드디어 이제 나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에 통학을 하는 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내가 동료 선교사가 안내해주어 오고 갔던 낮익은 지형지물들, 내심을 긴장을 하였지만 내가 점찍어 주었던 건물이 눈앞에 보이고 나는 내심 안도의 숨을 내 쉬며 아주 여유로운 목소리로 운전기사를 향해 외쳤다.
"브라아 이넥바~르" 그런데 무슨 일인가? 순간 버스안에 있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하고 버스안에 있었던 아줌마들 그리고 터키 아가씨들이 싱긋이 나를 보고 웃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무엇이 잘 못 되었구나 하고 직감적으로 눈치를 챘다. 이미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빨개져 있었다.
첫 날 수업을 하는 내내 수업이 집중이 안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아무튼 허둥지둥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디크멘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올라타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 아파트로 가는 방향에 조그마한 슈퍼가 보이고....그래서 나는 다시 그러나 이번에는 얼버무리는 목소리로 다시 기사에게 외쳤다.
" 브라다 이넥 바~르 " 이번에도 버스에 있는 사람들의 미소,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뒤 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도망치듯이 들어갔다.
뭐라 그럴까? 조롱을 당한 느낌, 그리고 창피함, 낭패감, 그리고 속에서는 화도 끓어 올랐다. 도대체 무엇인 잘 못된 것일까?
하지만 창피해서 누구에게도 물어볼수도 없었다. 적어도 대학을 졸업하는 선교 훈련을 받고 온 그리고 선택받은(?) 소수의 한 사람 이었던 나인데................
하지만 궁굼함을 떨칠수가 없었고 그리고 당장 내일이 문제였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멕시코에서 온 내 룸메이트인 선교사에게 자초지종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내가 연습했다던 문장을 다시 읊조렸다. " 브라다 이넥 바~르" 한 단어 단어에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자 마자 내 룸메이트인 선교사가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설명을 하였다.
즉 터키 청년이 가르쳐준 문장에 단어 하나를 트위스트 한 것이었다.
즉 이네젝(Inneck) 이라는 동사가 영어에 Get off, 내리다 라는 말인데 정말 한끝 차이로 바뀌치기 한 단어 내가 그렇게 자신있게 외쳤던 Innek 이라는 말은 " 소" 라는 명사였던 것이다.
알파벳도 모르고 터키에 온 햇병아리인 내가 알턱이 없었다. 즉 나는 저 여기에서 내려요 " 라는 말 대신 " 여기에 소가 있습니다.
" 저는 소입니다" 라고 외쳤던 것이다. 멀쩡하게 생겨먹은 외국인이 그러고 너무나 자신있게 외쳐 댔으니 그들에겐 얼마나 재밌었을까?
아뿔싸.............!!!
하지만 이것은 내가 그 후로도 내가 범해야 했던 수 많은 실수들의 서곡에 불과한 것이었다.
유난히 완벽주의자 였던 그리고 소심하고 열등감이 많았던 내가.......부푼꿈을 안고 첫 선교사의 관문인 언어학교를 가는 날 보기좋게 망신살을 당했으니..............이 창피한 애기를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아스라한 20여년전에 일이다.
되돌아 보니..........우리는 실수를 하는 것이 은혜다. 또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이 은혜임을 요즘 조금씩 깨 닫는다.
우리에게 실수가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내 삶에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존재를 인정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요즘 영어로 강의를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콩글리쉬를 한다.
이놈의 영어는 쉬운듯 하면서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이다.
이제 열살밖에 안되는 내 아들놈이 가끔 가다 내 영어 발음을 갖고 문법이 틀렸다고 가르쳐 주겠다고 거드름을 피울때면 은근히 속으로 부아가 난다.
유치원에 갈때는 한 마디도 못해서 Toilet 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외우게 해서 보냈건만.........
대학생 이었던 시절 한때는 나는 현지에 가서 살면 한 일년이면 그리고 영어권에서 한 6개월만 살면 다 통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당찬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호기인가를 절감하지만.....사람이 착각속에 산다고.....넘어지고 깨어져봐야....안다고....
오늘도 후배선교사들을 가르치면서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본다. " 이 놈들 중에도 사역지에서 산지가 얼만데 아직도 영어를 저정도로 밖에 못할까 ? 라고 속으로 팔짱을 끼고 비평할 녀석들이 있겠지."
아직도 못되 먹은 심보가 내 속으로는 " 그래도 너희도 한번 소가 되봐라 " 그러면 네 꼬라지를 알게 될테니까...." 물론 그것은 순간의 생각이고 나는 그들이 앞으로 경험하고 넘어가야할 그 일들을 생각해 보게 되면 가슴이 짠하게 아파 온다.
오늘도 수많은 선교사들이 부푼꿈을 안고 선교지로 나간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그래 많이 실수 하고 많이 절망해 봐라............그러나 절망만이 있는게 아니라 그 절망이 있기 때문에 은혜를 경험하는데............나는 후배들에게 늘 이렇게 당부한다. " 여러분 똑똑한 선교사 되지 말고요......선교지에서 오래 버티는 선교사가 되세요..........그러면 뭔가 길이 보일 겁니다.
그렇다. 만일 내가 그때 더 실수를 두려워 하지 않고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 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없었다면........
소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실수를 참 많이도 했다. 아니 지금도 나는 실수와 허물 투성이고 실패하고 넘어진다.
하지만 깊은 절망의 신음 속에 있을때 내게 들려 주었던 나의 영국인 리더의 말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 Johnny, You must remember that God is much bigger than your mistakes, God is not like a police men. He is our Father and our Helper."
그렇다. 나는 오늘도 때로는 눈물을 흘리면 그 말을 되 새기어 본다.
내 하나님은 내 실수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나의 도움을 주시는 내 아버지 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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