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누군가의 글에서 재미난 글을 읽었다.
" I am Sorry ! 를 잘하는 사람이 고액 연봉을 받는다" 는 글이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았다.
‘I am sorry'라고 사과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소득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조그비 인터내셔널은 최근 7천59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인터뷰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연봉이 10만달러 이상인 고소득자가 연간 2만5천달러 이하의 소득층보다 2배 정도 사과를 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꼈을 때 사과하느냐'는 질문에 연봉 10만달러 이상자 92%가 '그렇다'고 답변한 반면, 7만5천~10만달러 소득자는 89%, 5만~7만5천달러 소득자는 84%, 3만5천~5만달러 소득자는 72%, 2만5천~3만5천달러 소득자는 76%, 2만5천달러 이하 소득자는 52%만이 '그렇다'고 답변했다.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사과를 잘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또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을 때도 사과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10만달러 이상 소득자 가운데 22%가 '그렇다'고 답변한 반면, 2만5천달러 이하 소득자는 13%만이 '그렇다'고 답변, 10만달러 이상 고소득자가 2만5천달러 이하 빈곤층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사과를 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펄아울렛의 테리 셰퍼드 사장은 "이번 조사의 결론은 많이 벌고 싶으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로 재미난 통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이 글에서처럼 나는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은 아니다. 가난한 선교사가 고액을 받을일은 만무하지만 내가 고액을 받느냐 안 받느냐를 떠나서 , 나는 내가 잘못한 일에서 조차도 " 미안하다" 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인색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무엇이 우리를 Sorry 에 인색한 사람을 만들까?
첫번째, 우리 자신은 자신이 늘 완벽한 존재라고 믿고 싶어한다.
내가 Sorry" 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내가 완벽하지 못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나이를 먹어 갈수록 그 경직성은 더하여 간다.
더욱이 우리가 어느덧 작든 크든 리더라고 불리워지는 위치에 있을 때 내가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만큼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꼴이 된다고 생각하니 더욱이 그 말이 어려움을 보게 된다.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나서 더더욱 그런 경향이 두드러 진다.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인데....내가 나의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만큼 내가 영성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그럴때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존경을 잃어 버린다고 생각하는 불안함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참 얄굿은 자존감이다. "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을 수없이 외쳐 대지만 우리는 수도없이 내가 죽었다는 외침 속에서도 여전히 나를 지키고 싶은 얄굿은 자존감이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죽엄음을 나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을 할때 즉각적으로 그 실수를 인정하고 I'm sorry, its my fault" 라고 말할 수 있을 때가 아닐까?
두번째, 우리가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을 나 자신이 실패자로 인정한다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상하게 " 성자 컴프렉스" 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성경이 우리를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씀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이 성숙을 향해 달음질하고 거룩함과 의에 이르기에 힘써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성경은 단 한번도 우리에게 실패가 실수가 없는 삶을 살라고 요구하신적이 없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가 범죄( 실수, 실패)할때에 죄를 서로 구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말씀 하신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주님을 믿어도, 주님의 거룩한 성도가 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실수를 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 Failure is an event, not a person" 실패는 하나의 사건이지 그것이 그 사람이 실패자이고 그리고 그 사람의 인격이 아니라는 문제이다.
하나님이 "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불리움을 받았던 우리가 흠모하는 다윗왕조차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는 삶을 살았는가...!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며 다윗에에는 우리에게 없는 하나의 심성이 있었는데 그것은 누군가가(특별히 나단은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것을 지적하엿을때 그것을 부인하지 아니하고 즉각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는 즉 하나님깨 I'm sorry for what I did !" 라고 고백하는 순수함이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실수를 하고 어떤 한 일이 우리를 영원한 실패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통하여 우리를 더욱더 의의 거룩함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째찍질 같은 역할을 함을 바라볼 수 있을때 우리는 비로서 우리의 실패나 연약함에 대하여 정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완벽주의는 병이고 그리고 그것은 불 신앙인 것이다.
왜냐하면 완벽하지 않은 존재인 자신을 자꾸만 완벽한 하나님의 위치에 자기를 올려 놓으니 그것이 불신앙이요 또 그러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때마다 그것을 포장하고 아닌척 위장하려니 얼마나 고통 스러울까...................?
나는 그 동안 그러한 삶을 내가 살아 왔음을 안다. 참으로 고단한 삶이다.
주님앞에 I am Sorry ! 라고 해 버리면 됬을것을 내가 아이들한테 잘 못을 할때 아빠가 실수했다 미안하구나 하면 됬을일을 그 놈의 자존심을 지키느라 버티느라 아빠로서의 체면을 더 구긴일이 얼마나 많은지 ?
당신은 실패를 받아 들이는가? 그것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성공을 향해 가는 하나의 징검다리임을 우리는 정말로 믿음으로 받아 들이는가?
실패를 자신의 인격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 들일때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일때 우리는 우리 안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세번째,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그 만큼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옷을 입는데도 편안함이 있다. 케쥬얼한 옷을 입고도, 자동차 문에 흠집이 있어도 정말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거에 그렇게 개의치 않지만, 가난한 사람일 수도록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서 더욱더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예민하리 만치 민감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몇년전 이곳 선교기관의 재단 이사장을 한국의 목사님과 만난 적이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만나는 첫 대면의 날인데 그 이사장은 픽업 트럭을 타고 작업복에 장화를 신고 모자를 쓰고 나타난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례하게도 볼 수 있지만, 그 사람은 사실은 뉴질랜드에서도 몇번째 안가는 백만장자의 대열에 있는 교회의 장로님이셨던 것이다.
함께 했던 목사님과 나 자신이 감동을 받았던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형식에 매이지 않는 그러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일 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관대할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 중의 더러는 너무도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한 사람들을 본다.
하나님이 나를 있는 모습 받으셨다는 성경의 진리는 하나의 지식에 불과하고 자신에게 하나님보다 더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적용하다 보니...결국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관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늘 못 마땅한 마음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당신은 " I am Sorry !" 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가 ?
연봉을 높이려면 오늘 부터 이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 미안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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